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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9. 2021

<레미니센스/Reminiscence>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단한 이유는 친절한 설명 때문이 아니다.

<레미니센스>는 생각해 보면 꽤나 흥미로운 지점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일단 주연 배우들의 인기도 상당하지, 국내에서 은근 인기가 있는, 기억과 시간에 관한 SF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했구요. 무엇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정말 폭망했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이 영화, 자신이 가진 소재를 온전히 활용하지 못합니다. 이런 기억과 과거, 시간에 관련된 SF는 구구절절한 설명 보단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줘야 인상적인데, <레미니센스>는 과도하게 친절한 설명을, 그것도 독백으로 풀어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설정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설명들을 나열해놓고 있기 때문이 아니거든요. 자칫 복잡할 수 있는 설정을 과감히 보여주는 것이 놀란의 장점인데, 이 영화는 그것의 정반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낡고 오래되어서 감흥이 없는 SF 소설을 읽는 거 같았어요. 덕분에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영화가 품는 의심도, 반전도 너무나 미약해서 여러 사건들이 터지고 있음에도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아요. SF 스릴러가 아닌 절절한 로맨스의 형식을 하고 있음에도 감정을 건드는 장면이 하나도 없더군요.

정말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너지는 개연성과 얕은 설득력도 문제입니다. 기대했던 방향을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로맨스는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사건과 장면의 흥미도가 부족해지는 것도 쉽지는 않거든요. 근데 이걸 해냅니다. 한 가지 길만 따라갔어도 너무 무난했을 이야기를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가 관객들을 당황시킵니다. 거기에 너무 뜬금없고 동떨어진 엔딩은 그나마 참았던 설정 오류들에 대한 의문들을 한 번에 쏟아붓게 만들기에 충분했네요.

분위기 자체는 좋습니다. 저는 이런 어두침침한 디스토피아적 배경이 좋더라고요. 근데 이게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점은 아쉽습니다. 물이 있다는 거 빼고는 딱히 달라진 점이 없더라구요. 휴 잭맨과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는 참 좋았습니다. 이런 좋은 무기들을 동원하고도 이렇게 밖에 못했다는 점이 아쉽게 남네요.

인기가 없는 것은 비단 홍보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대중성도 없을뿐더러 예술, 철학적인 요소마저 얕아 대체 이 영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




★★☆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단한 이유는 친절한 설명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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