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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30. 2021

<나쁜 피/Mauvais Sang>

순간을 스치고 영원히 남은 그 시절의 사랑들, 눈물들, 질주들.

레오 까락스가 연출하고 드니 라방, 줄리엣 비노쉬, 줄리 델피가 출연한 1986년작, <나쁜 피>입니다. 이것도 레오 까락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환데, 역시 좋았습니다. 전 <소년 소녀를 만나다>보다 더 좋았던 거 같아요.

까락스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은 살아있습니다. 저는 특히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감명을 받았는데요. 전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도 그랬지만 사운드가 따로 노는 경향이 있죠. 생략되고, 어긋나고, 삽입되는, 상황에 맞지 않는 사운드들을 보고 있자면 굉장히 황홀합니다. 게다가 영화는 독백이 많은데, 독백은 자칫하면 굉장히 지루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다만 <나쁜 피>, 더 나아가 레오 까락스 영화의 독백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독백이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이 드네요.

레오 까락스의 여느 영화들과 같이 이 영화도 굉장히 시적이며, 난해한 이미지와 대사들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장면들이라는 것인데, 쉽게 풀어내는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면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게, 혹은 불친절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다만 이야기 자체는 쉬운 편입니다. 딱히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는 편이고요 사실. 저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네요. 이게 그 누벨 이마주인가 싶기도 했어요. 영화는 그 시절 청춘들의 사랑과 내면을 아주 기교적인 시각화로 담아내고 있는데, 장면 장면의 임팩트가 굉장합니다. 저는 그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 음악에 맞춰 드니 라방이 달리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와 정말 강렬해서, 그저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달리는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싶기도 했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시퀀스 중 하나가 될 거 같아요.

뜨거웠던 시절의 사랑들을 다루는 것도 훌륭합니다. 청춘의 사랑들을 풀어내면 풀어낼수록 고통의 연속이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남는 건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당시 뱉었던 말들과 스쳤던 기억들뿐이겠죠. 그것만큼은 영원히 남을 테니까요. 이 영화를 말할 때 배우들을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드니 라방도 물론 <소년 소녀를 만나다>때보다 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두 여배우에요. 22살의 줄리엣 비노쉬와 17살의 줄리 델피. 야, 이건 정말 감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더군요. 줄리 델피야 <비포 선라이즈>에서 정말 이쁘다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줄리엣 비노쉬는 작품을 많이 안 봤을뿐더러 그렇게 이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착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아름답다는 건 그 분위기가 사람을 휘어잡는다는 건데, 당시 줄리엣 비노쉬는 그런 매력이 넘치더라구요. 보는 내내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보다 더 좋았어요. 약간 더 대중적(이라기엔 아직 난해하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많지만)이기도 하고요. 우선 기본적으로 더 재밌게 본 거 같네요.




★★★★☆
:순간을 스치고 영원히 남은 그 시절의 사랑들, 눈물들, 질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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