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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31. 2021

<퐁네프의 연인들>

아직 익지 않아서, 더 내려갈 곳이 없어서, 잊는 방법을 몰라서.

레오 까락스의 1991년작, <퐁네프의 연인들>입니다. 이 영화가 아마 까락스 작품 중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영화겠죠? 국내에서 흥행도 많이 했던 걸로 알고 있고, 또 영화가 까락스 작품 중에선 단순하고 쉬운 편이기도 하구요.

일단 까락스 감독은 시퀀스가 주는 매력과 힘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정말, 장면 장면이 이상하고 괴상망측하거든요. 정말 정신없기도 하고요. 근데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시퀀스를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네요. 너무나 부러운 능력입니다. 영화 중반 불꽃이 터지면서 알렉스와 미셸이 춤을 추고 온갖 발광을 하는 장면은 너무 좋았네요. 까락스 영화는 영화마다 기억에 강하게 남는 시퀀스가 꼭 한 두 개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쁜 피>에선 드니 라방의 질주였다면, <퐁네프의 연인들>에선 불꽃 신과 엔딩 신이었던 거 같네요. 두 장면, 나아가 모든 시퀀스가 괴상망측한데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사랑스럽습니다. 신기해요.

까락스 영화가 단순 로맨스일 리가 없죠. 사랑과 집착, 광기 그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랑을 잃은 여자와 밑바닥에서 사는 남자의 현실을 아주 비참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단순 로맨스 영화를 생각하고 본다면 뒤통수 맞기 십상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이어주는 사랑이 기억에 참 남아요. 이들의 사랑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이 사랑이 아닌 건 아니죠. 이들은 아직 익지 않았고, 더 내려갈 곳도 없으며, 잊는 방법도 몰라요. 심지어 알렉스는 다리가 불구이고, 미셸은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알렉스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도 보여주고요. 그럼에도 이런 괴상망측한 연인의 사랑이 감명 깊게 다가오는 건 이런 상황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이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이런 사랑을 하겠어요.

드니 라방은 연기 참 잘하는 거 같습니다. 몸을 아끼는 거 같지도 않고요. 영화를 보다 보면 이걸 배우가 실제로 찍었나 싶은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직접 연기했는지의 여부는 모르지만요. 줄리엣 비노쉬 여기서도 정말 아름답게 나옵니다. 한쪽 눈은 가리고, 거지꼴로 나오는데 이렇게 이쁠 수가 있나요. 근데 저는 <나쁜 피>에서의 줄리엣 비노쉬가 더 좋았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나쁜 피>의 안나가 더 매력적이었던 거 같아요. 클라우스-마이클 그러버가 맡은 한스라는 인물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미셸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은 뭔가 감동적이었네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는 <나쁜 피>가 더 좋았지만, 이 영화도 정말 좋았습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이 영화까지 이어지는 사랑 3부작의 마무리로는 훌륭했던 거 같아요. 유일한 해피엔딩이기도 하구요. ^^




★★★★
:괴상하게 낭만적이다. 아직 익지 않아서, 더 내려갈 곳이 없어서, 잊는 방법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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