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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Sep 03. 2021

<홀리 모터스/Holy Motors>

애수와 예찬. 운동과 신성. 인생과 영화.

레오 까락스의 2012년작, <홀리 모터스>입니다. 소문대로 어려운 영화였지만,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아요.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게 해주는 듯한 영화를 볼 때면 정말 경이롭습니다.

굉장히 난해합니다. 그리고 실험적입니다. 보통 아무리 어려운 영화라도 줄거리 정도는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스카라는 사람이 9개의 인생을 산다는 것으로만 요약할 수 있어요. 내용을 첨가하려면 영화를 그대로 서술해야 할 정도입니다. <홀리 모터스>는 인생을 가장 영화적으로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메타포나 상징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렇지, 조금만 걷어내고 살을 붙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너무나 비슷해요. 죽지 못해 살고, 끝없이 움직이며, 가면을 쓰고 연기(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하기도 하고, 자신을 죽이기도 하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그것을 정말 황홀한 시각화를 통해 보여주면서 무엇을 하며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명쾌하고 강렬하게 대답한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이들, 우리들을 위한 예찬처럼 느껴지기도 하구요. 

동시에 굉장히 애처롭기도 합니다. 산다는 건 정말 저주나, 벌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언제나 행복함만이 가득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에도, 살죠. 그럼에도, 발버둥 치고요. 그럼에도, 자신을 찾는 과정. 끊임없이. 삶이란 신성한 운동을 이렇게 경이롭게 담아내는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해석하려, 이해하려 애쓰는 건 소용이 없어 보이기도 하네요. 물론 정말 어려운 영화고, 해석하는 재미도 있으며, 또 감독이 아닌 이상 온전히 해석하는 불가능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제가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불필요하다고 느낀 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해석하려고도, 완벽히 해석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인생의 경계를 교묘히 무너뜨리면서,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애처로우며, 그렇기에 신성한 삶을 왜 해석하려 애쓰느냐고 호기롭게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드니 라방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9개의 배역을 동시에 맡아서 하는데, 훌륭한 배우라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말까 한 역할들을 한 영화에 담아낸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수준이었네요. 저는 이 영화의 미장센이 너무나 황홀해서 그냥 빠져들면서 봤습니다. 드니 라방의 분장도 최고였고, 신 자체가 너무 이뻤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저는 중간에 버튼식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장면이 최고였습니다. <나쁜 피>의 질주 장면, <퐁네프의 연인들>의 불꽃 장면과 비견되는 강렬함이었네요.

최고였습니다. 살면서 이런 감정 느끼게 해준 영화 별로 없었네요. 물론 온전히 다 이해를 한 건 아니었지만, 제가 느낄 수 있는 건 다 느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정말 황홀하고 경이로웠으며, 애처롭고 신성했습니다. 마치 인생처럼요.




★★★★★
:애수와 예찬. 운동과 신성. 인생과 영화. 그 사이의 경계를 성스럽게 꿰뚫는 영화적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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