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Dec 04. 2021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베이비 드라이버>로 유명한 에드가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입니다. 사실 호러 장르임에도 일말의 고민 없이 극장으로 간 이유 중 하나가 제가 요즘 가장 빠져있는 배우 중 두 명인, 안야 테일러 조이와 토마신 맥캔지가 동시에 나온다는 점이었죠. 물론 <베이비 드라이버>를 굉장히 재밌게 보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기대를 걸었던 점은 영화의 이야기보단 그 외적인 미장센이나 플레이리스트 등이었습니다. 그 부분만큼은 영화 내내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원래 네온 사인의 색감이나 분위기 등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복고풍의 디자인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내내 눈이 행복했달까요. 전체적으로 휘황찬란한 미장센이 살아있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엘리가 처음으로 샌디가 되는 장면이 가장 아름답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부분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고, 황홀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조금은 어지럽기도 한 혼란스러운 연출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습니다만 우아한 느낌, 그리고 그것이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변해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고요. 60년대의 느낌이 가득 나는 음악도 내내 좋았습니다. 리듬감 있는 점프 스케어는 처음 봤네요. 정정훈 촬영 감독님의 촬영도 훌륭했습니다.

다만 이야기적인 면에서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사실 초중반까지는 너무 좋았거든요. 근데 어느 지점부터 갑자기 급발진을 하더니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원체 빠르고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감을 잡기가 어렵더군요. 결국 영화가 반전이랍시고 내놓은 진실은 영화를 더 황당하게 만듭니다. 정녕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나 싶더라고요. 그냥 모든 등장인물, 혹은 영화의 태도가 너무나 애매해서 어디에 갈피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영화는 과거의 찬란한 빛을 동경하는 향수에게서 공포를 뽑아내는데요. 밝은 빛 밑에는 깊은 어두움이 있기 마련이죠. 과거는 언제나 미화되고요. 과거의 공포가 현재에는 아예 없어지지도 않았겠죠. 이 점을 주목했다는 부분은 너무 좋았지만 이걸 잘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호러 장르 말고 다른 장르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더 만족스러운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와 토마신 맥캔지의 퍼포먼스는 역시였습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는 등장할 때마다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한 배우에요. 60년대 스타로 완벽히 변하면서도 긴장감까지 불어넣어 주었네요. 토마신 맥캔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올드>보다 조금 더 심리적인 연기가 요구되는 장르와 역할을 맡았음에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만족스럽게 나온 작품은 아닙니다. 정통 호러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렇지만 분명 인상적인 장면들이 존재하고, 그 장면들의 매력이 상당해서 보는 맛은 있었던 영화였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 빠진 로맨스/Nothing Seriou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