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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Sep 03. 2020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

몰락해 어둡고 부정적인 미래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수없이 많이 나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몰락한 세계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왜 몰락했는지에 대한 원인과 몰락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법이 무궁무진하고 또 흥미롭다는 것도 크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배경은 외계인이나 전쟁, 혹은 독재 등인데, 여기 엄청나게 신선하고 독특하면서, 가장 절망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역작이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칠드런 오브 맨>이다.




영화는 여성의 임신 기능이 모두 상실된 2027년, 아들이 죽은 후 의지 없이 살아가던 테오가 전 부인 '줄리안'이 소개해 준 임신한 여성 '키'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알폰소 쿠아론의 대단한 작품 중 하나다. 과연 <그래비티>의 전신답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이 정말 미친듯한 디스토피아 설정인데, 임신 기능을 상실한 여성으로 더 이상 아이들이 없고, 또 정부에선 난민들을 탄압하거나 자살 약을 공급하는 등의 설정들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그것만의 매력으로도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이러한 색다른 디스토피아 설정으로 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영화 내내 아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엔딩 크레딧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래비티>에서도 느꼈던 것과 같이, 알폰소 쿠아론의 롱테이크를 쓰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롱테이크를 가장 잘 쓰는 감독으로 느껴질 정도. 사실 여기에는 촬영 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공이 컸다. 롱테이크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의 롱테이크 촬영 능력은 정말 감탄만 불러일으킨다. 후반부 20여 분간 이어지는 롱테이크로 촬영된 시가지 전투신은 정말 압권이자 영화의 백미. 2006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낡아 보이거나 어색한 부분이 없이 촬영 면에서는 정말 완벽하다고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이지 빠져들게 만들고 경이롭게 만든다.

마지막 후반부 전투신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롱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를 죽고 죽이며 총격전을 벌이고 포탄을 터뜨릴 때, 그들의 총성과 비명을 멈춘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가녀린 울음소리. <그래비티>와 마찬가지로 고요함을 아주 잘 활용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생명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정말 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아이가 나가자 다시 포탄을 터뜨리며 전투하는 장면을 보면서 잔혹한 인간성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더한다. 

이것 외에도 특별한 장치 없이 그저 분위기만으로 대단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극에 몰입도를 더하면서 매력적인 주조연들의 인상 깊은 등퇴장으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이 주연급으로 나오는 인물들을 가차 없이 퇴장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비극적인 희생이 결국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이라는 아이러니함도 잘 다룬다. 다만 약간 아쉬웠던 것은 조금 허무하게 퇴장시키는 인물들도 있는 편. 감독의 의도가 이러한 허무함을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명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인가. 이를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바쳐 희생하는 역설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알폰소 쿠아론의 역량은 정말 대단하다. 보고 났을 때의 느낌은 공허함뿐이지만, 사실상 깔게 없는 영화다. 




총점 - 9.5
압도적인 연출과 촬영으로 생명의 고귀함을 각인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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