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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Sep 17.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름답게 타오르던 그녀들의 사랑.

최근 들어 열풍이 불고 있는 퀴어 영화는 사실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혐오는 당연히 아니고, 아무래도 끌리지 않았던 것이 큰데, 올해 초 가장 핫했던 영화 중 하나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조금 관심이 갔었으나 접할 기회는 없었기에 놓쳤던 영화였다. 이 작품의 감독인 셀린 시아마의 이전 영화들이 속속 개봉해오고 있었기에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시간이 나서 보게 된 영화다. 올해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충분히 포함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영화는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주기 위해 온 화가 마리안느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요동치지 않고 고요하고 잔잔하게, 서로를 지긋이 응시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영화다. 셀린 시아마의 탁월한 연출과 장면마다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지는 촬영,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을 증명하듯 촘촘한 각본, 그리고 뚜렷한 색감과 아름다운 배경까지, 그저 단순한 퀴어 로맨스물에 그칠 영화가 절대 아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캐릭터성이 생각보다 진중하고 확고하며,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도가 상당히 높은 영화다. 상당한 수작.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전해주는 영화라서 더욱 놀랐던 것 같다. 물론 퀴어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다는 점 또한 만족스럽지만, 서로에 대해 기억한다는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해 준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둘이 나누는 대화 중 서로의 첫 웃음, 서로의 첫 키스에 대해 기억한다는 대사가 정말이지 감명 깊었다.

여운이 상당히 오래 남는 영화다.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해줄 장치들이 상당히 많다. 오르페우스의 신화 이야기와 같은 복선이나, 서로를 지긋이 응시하는 눈빛, 정말 뜻깊은 대사들과 같이 꽤나 많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선정이 정말 탁월했다고 본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의 멜로디가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맴돈다. 이 음악과 함께 롱테이크 촬영으로 완성된 엔딩 신은 정말 압권이며,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엔딩 덕분에 여운이 이렇게 길게 남지 않았나 싶다.

배우들의 역할도 상당히 큰 편이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배우들로 꽉꽉 채워져있으며, 각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는 할 일들을 다 한다. 모든 배우가 각 캐릭터들을 잘 소화하는 편이며, 대사가 별로 없는 영화 특성상 표정 연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엘로이즈 역의 아델 하에넬 배우가 눈에 띄었는데, 셀린 시아마와 함께 작업한 전작 <워터 릴리스>도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마르안느 역의 노에미 메를랑도 좋았다.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닌 배우 같았다. 

다만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인지 여운은 깊었지만 그렇게 감명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점은 흠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고 기대를 너무나 많이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엘로이즈와 마르안느의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 왔다갔다하고 설득이 안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다만 충분히 몰입도가 높았으며 만족하며 봤던 영화였다. 이 점에서 충분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접할 기회가 적었던 퀴어 영화 장르였지만, 그 이상을 보여준 걸작이 아닐까 싶다. 올해 개봉작 중 몰입하며 봐서 만족한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다. 셀린 시아마의 이전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작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총점 - 9.5
사랑이라는 불꽃, 기억이라는 장작으로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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