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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드소마

못배운놈

by 여도경

[영화]

22.미드소마

-못배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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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관용어가 진정으로 이해될 때 어른임을 느낀다. 어른이 된 것을 실감하게 된 말은 '못 배운 놈'.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강요한다거나, 양보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군다거나, 혹은 내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거나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워야 할 교육을 못 받았구나 생각했다.


'하고 싶다' 보다는 '해야 한다'로 살아온 나는 교과서적인 도덕에 조금 더 민감했다. 공감능력이 없는 게 가장 큰 컴플렉스였던 나는 더더욱 도덕시간에 배운 것들이 중요했고,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과 정상성이 인생의 나침판이었다.


쉬운 건 아니었다. 왜, 늘 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 엄격하지 않은가. 사회적인 동물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나는 지치기 십상이었고 본능적인 사람을 보면 동경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다 모든 걸 내려놓고 살아보자 생각이 들었고 편하게 살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때 대니(플로렌스 퓨)를 만났다.


대니는 남의 일이래도 잔혹한 방식으로 가족을 잃었다. 혼자를 견딜 수 없던 대니는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에게 과도하게 기댔다. 크리스티안은 그런 대니를 힘들어하면서도 연민과 우유부단함으로 대니를 어정쩡하게 받아줬다. 그 과정에서 대니는 크리스티안의 주변인들에게 지겨운 사람, 떼어내야 할 혹이 됐다. 그때 펠레(빌헬름 브롬그렌)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에 이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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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축제는 낯설었다. 문명을 겪지 못한 원시인, 과거 식인종이 덜 잔인할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만든지 모르는 삶의 시간표. 특정 나이가 되면 사람은 꼭 죽어야했고 여성은 아이를 잉태해야했고 그렇게 그 마을을 유지시켜야했다. 가족끼리 번식하면 유전병 확률이 높으니 초대된 외부인들 중 남자들은 임신 도구가 되었고 마지막엔 재물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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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는 5월의 여왕이 됐다. 마을의 가장 큰 축제에서 핵심 인물이 되는데, 그러던 중 크리스티안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걸 봤다. 대니가 괴로워하자 마을 여자들은 대니와 같은 톤으로 울어줬다. 대니를 제외한 남자 외부인들은 모두 제물이 됐고, 제물들이 불에 타며 괴로워하자 마을 사람들은 또 똑같은 톤으로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주변인을 모두 잃은 대니의 얼굴에는 평정심이 찾아왔다.


크리스티안은 대니가 원하는 위로를 하지 못했다. 공감보다는 조언을, 사실 지친 모습도 티가 났을 거다. 하지만 대니는 마지막 동아줄인 크리스티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대니에게 평정심이 찾아온 건 끔찍한 일들을 모두 겪은 후다. 크리스티안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재물이 되어 불에 타는 것까지 봤다. 하지만 대니 곁엔 대니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감이 필요했던 대니는 그렇게 그 마을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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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의 모습이 대니가 배운 정상은 아닐 것이다. 기괴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이 필요했던 대니에게는 자신을 무한 지지해주는 마을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을에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사회성에 맞는 거였고 정상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한다를 늘 새겼던 나는 사회성과 정상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시대의 규율은 늘 변한다. 나는 20년 전에 배운 도덕에 사로잡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절대선과 절대악은 있다. 허나 맹목적인 당위로 주변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옳음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귀찮아 할 때 꼰대가 된다.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을 향한 꼰대질은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못배운 사람이겠거니 하며 관용어를 다시 해석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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