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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파과

23. 결국은 사랑

by 여도경

[영화]

23. 파과

-결국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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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언가를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왔다. 어릴 때는 ‘나’ 자신을 키우고, 내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느낄 때는 아이를 낳아 키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아니면 몰두할 취미라도 키운다.


‘키운다’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돌아오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내어주는 일이다. 결국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삶에 의미가 생긴다.



조각(이혜영)은 실수 없이 완벽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살인병기다. 실수가 없을 수 있었던 건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며 깔끔하게 방역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조각도 나이를 먹으며 찾아오는 신체 변화를 피해갈 순 없었다. 떨리는 손을 붙잡고, 노쇠해진 몸으로 위험한 순간을 넘기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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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인가. 크게 다쳐 응급실에 갈 정도가 된 조각은 봉회(연우진)에게 치료를 받았다. 봉회는 온갖 무기를 숨긴 조각을 치료하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조각은 그런 봉회에게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조각의 회사에 스카우트된 투우(김성철)는 조각을 찾아와 봉회와의 관계를 따지며 협박했다. 목격자를 왜 처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조각은 봉회를 처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투우를 위협하며 봉회를 지키려 애썼다. 그러다 투우가 자신이 죽인 남자의 아들임을 알게 된 조각은 계획을 세웠다. 자신을 사지에 몰아넣으며 투우를 유인했고, 그렇게 그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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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아 돌아온 투우는 해니를 납치해 조각을 해피랜드로 끌어들였다. 조각은 해피랜드에서 시간을 끌며 투우와 사투를 벌였다. 해니를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분노한 투우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반전은 투우의 감정에 있었다. 그는 조각이 자신을 잊은 사실에 분노하고 슬퍼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서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떠났고, 심지어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조각은 죽어가는 투우를 안아주며 그의 서운함을 달랬다.



조각이 살인병기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사랑’이다. 그는 살인병기가 된 이유를 ‘쓸모’라고 했다.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로 느껴졌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쓰임새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류(김무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과연 조각은 살인병기가 되었을까. 조각에게 류는 전부였고, 그의 말이었기에 그만큼의 효용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조각이 봉회를 살린 것도, 조건 없는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봉회는 살인 무기를 지닌 조각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치료만 해주었다. 유리조각을 들이미는 조각에게도 약을 챙겨주겠다고 했고, 위험한 순간에도 "야위었으니 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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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투우는 조각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했을까. 이성적 사랑일까, 모성에 가까운 감정일까. 그걸 고민하려던 순간, 문득 ‘그게 중요한가?’ 싶었다. 사랑해주는 이 없던 시절, 유일하게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다. 첫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준이 된다. 투우에게 조각은 사랑의 전부였고, 살아갈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분노했다. 자신의 세상이었던 조각이,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또다시 버리려 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걸고, 다른 아이를 구하려 했다. 비참했을 것이다. 곁에 두는 것조차 하지 않으면서, 왜 저 아이는 그토록 지키려 하는 걸까.


투우가 마지막에 조각에게 진 건, 아마도 감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각이 자신을 두 번째로 버린 그 순간,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지켜낼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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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삼남매를 키워낸 엄마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았어?" 셋 다 타지로 대학 보내고, 학비에 생활비까지 다 감당하면서도, 더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부모님의 말이 의문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너네 보면서 살지.” 너무 뻔한 말 같아서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그게 부모의 사랑이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기력에 빠졌던 어느 날, 두문불출하며 지낸 시간이 있었다. 먹고 살 돈은 있었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생활은 되었기에, 고요함 속에 나를 맡겼다.


그러던 중 찾아온 사랑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하루빨리 사회에 복귀하고 싶었고,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졌다. 그 사랑은 내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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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결국 사랑이다. 류는 “지킬 것을 만들지 말자”고 했지만, 그 말은 곧 “지킬 것을 잃으면 나 자신도 무너질 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지킬 것이 없다면 나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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