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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19. 2018

 19살, 첫 실패

첫 수능 도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그냥 부모님이 보내는 학원이나 꾸역꾸역 가고, 시험기간이 오면 그때그때 시험 범위에 맞춰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내가 공부를 잘, 열심히 하길 바라셨다. 부모님은 이미 누나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신 후였기 때문에, 항상 걱정거리였던 막내인 나만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1학년 동안은 게임과 축구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했다. 그냥 시험기간에만 좀 끄적 끄적한 정도이다. 2학년이 돼서야 담임 선생님이 너는 잠재성이 보인다며, 나에게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내 성적 상승에 관심을 쏟으셨다.


 2학년 때부터는 조금 성적이 오르긴 했다. 1학년 때 대부분의 성적이 엉망이었던 나는, 2학년 때 성적을 올리긴 했다. 어머니께서 2학년 때 내신성적을 3등급대로 올리면 좋은 축구화를 사주겠다고 하신 게 기억이 난다. 성적에 올리는 데 성공한 나는 좋은 축구화를 샀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다르게 보면 고3의 시작이었다. 나는 현실을 깨닫고,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그나마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에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돼서 두 분이 수술하실 일이 생겼다. 나에게는 그것 또한 큰 동기부여로 작용했던 것 같다.


    고3이 시작되었고, 나는 목표를 그냥 서울에 있는 대학에만 진학하자!라고 잡았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내 상황과 성적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적이 좋게 나온 건 아니었다.


 3,4월 모의고사는 형편없었다. 원래 좀 했던 영어를 제외하고는 성적이 처참했다. 사실 모의고사에 별로 노출이 되지 않아서 뭐가 뭔지 잘 몰랐던 것도 한몫했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 시험기간에만 내신을 끄적끄적거리던 학생이었기에, 모의고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적 안 좋다고 포기하기엔 제대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거 같다.


    다행히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기점으로, 성적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능 전 가장 중요한 시험인 9월 모의고사에서, 나는 내가 겨울에 목표했던 성적인 서울권 대학 합격선에 근접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쳤던 9월도 내 실력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수능 때는 더 자신 있다고 담임 선생님한테도 자신있다고 하던 기억이 난다. 논술전형을 내 성적보다 대부분 상향 지원을 하고, 나는 수능을 기다렸다.


    그리고 수능 당일,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모교보다 더 많이 방문했던 동네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거나, 축구할 때면 맨날 갔던 곳이기에, 어쩌면 내 고등학교만큼이나 많이 방문했고 익숙한 곳에서 시험을 친다는 안도감에, 진짜 하늘이 도우시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아버지와 시험장소로 걸어가는데, (시험장소가 우리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후배들의 응원소리. 그걸 듣자마자 미친 듯이 긴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교실에 들어서고, 앉을 때까지도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받아 든 국어 시험지와 함께, 국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제일 칼을 갈고 있었던 과목이 국어인데, 문학까지는 시간에 맞춰 잘 풀었던 것 같다. 근데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 문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거기에 멘탈이 무너지더니, 글이 읽히지가 않았다. 이상했다. 숨을 잘 쉴 수가 없었고, 머리가 새하 애지고, 계속 안절부절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감독관을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결국  세 지문 정도 찍어서 냈던 나는, 시험이 망했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수학도 푸는 둥 마는 둥 멘붕상태에서 풀고,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으면서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멘탈이 이미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영어 시간이 찾아왔다. 진짜 논술 최저라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풀었으나.. 나머지 과목들도 거의 반 멘붕 상태에서 풀었던 것 같다. 시험 장소에서 나와서 이제 수능이 끝났다는 해방감보다는, 정말 세상이 뒤짚힌 것 같았다. 고작 이 정도 보여주려고 내가 그 엿같은 시간들을 견뎌왔단 말인가? 내 실력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슬펐다.


수 천 번은 오갔던 그 골목 거리를 걸어 집에 오는데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방에 들어와 채점을 시작했다. 역시나 형편없는 점수들. 그리고 누나가 조심스럽게 들어와 수고했다고 나를 안아줬다. 그때 진짜 엄청 울었던 것 같다. 거의 그때 이후로 1시간 동안은 계속 울었던 것 같은데, 아빠는 이런 나를 데리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사주셨다. 그날 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실력을 반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미칠듯한 억울함에 잠을 자지 못했었다.


    그 날 이후, 진짜 일주일 동안은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생애 처음으로 이렇게 큰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우울감에 사로잡혀 집에서도 잘 나가지 않고, 그 당시 나가야 되는 가기도 싫은 학교를 그냥 꾸역꾸역 나갔다. 친구들은 망쳐도 수능이라는 큰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다 재밌게 놀러 다니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학교를 나가고, 받아 든 성적표. 역시나 처참했다. 논술 최저는 하나도 맞추지 못했으며, 서울권 대학은커녕 경기도권 대학도 아슬아슬한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그리고 겨울 방학에 정시 상담을 갔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 성적표를 보고 실망을 하셨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시작된 상담과 내가 갈 수 있는 대학들. 그 당시에 그 리스트에 있었던 대학들 중 내가 흥미를 가지대학은 없었다.


    상담에 갔다 온 후,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남은 두 달을 열심히 놀고, 재수를 할 것인지, 그냥 이대로 진학을 할 것 인지. 사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수능 끝나고 딱 나오면서 느낀 것이 다시 봐도 잘 볼 자신이 없었다.


내 멘탈과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 때문에, 이런 큰 시험에서 멘탈 관리는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멘탈이 좀 회복되고 난 후, 나는 시험지들을 프린트해 다시 풀어보았다. 그리고 풀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평소라면 쉽게 풀고 넘어갈 문제들도 많았지만, 내 순수한 실력이 부족해서 못 풀었던 문제들도 꽤 된 것이었다.


    그 이후, 일단은 휴식기를 좀 가지기로 생각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던 나는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했던 알바는 집 앞에 있는 주유소에서 세차 알바였다. 일단 내가 결정을 할 수 있을 때 전까진 시간이 좀 있기에, 좀 놀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직접 돈을 한번 벌어보고 싶었다. 돈을 힘들게 벌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부모님의 말이 떠올라  알바도 일부러 힘든 걸 선택해서 세차 알바를 하게 되었고,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게임기를 사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 겨울도 상당히 추웠었는데, 영하 7도는 기본이고 어떤 날은 영하 18도까지 떨어졌던 거로 기억한다.


정말 손 발 꽁꽁 얼 거 같은 추위에 나는 주유소에서 삼촌들과 차를 하루에 몇백대 씩 닦으면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삼촌들이 내가 고3인걸 듣고 나셔서,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주셨는데, 이게 내가 선택하는데 상당히 큰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갓 고등학교에서 나와 이제 사회를 보기 시작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암튼 되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신 것 같다.


    알바를 끝내고, 2월이 되어 나는 선택을 내려야 했다. 그냥 대학에 진학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재수를 할 것인지. 사실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면서 마음은 이미 많이 정해진 상태이긴 했다. 재수를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내가 실력적으로 부족했고, 사실 고3 생활 동안 나름 열심히 했지만, 정말 부모님이 소위 말하는 코피 쏟을 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건가도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억울함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내가 내심 재수를 하길 바라신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하셨지만, 간접적으로 내가 한번 더 도전해봤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보이셨다.


그렇게 나는, 2016년 2월 15일. 서초역에 위치한 재수 종합반에 등록하고 재수에 도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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