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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22. 2018

21살, 공황장애- (2)

자퇴

개강 전 날에 폭탄선언을 한 후, 부모님께서는 그걸 왜 지금에서야 말하냐며, 자퇴 후에는 계획이 있느냐며 그냥 내가 합격한 대학에 다니라고 나를 설득하셨다. 거의 2시간이 지나서야 얘기의 결론이 나왔다.


"일단 내일 학교는 가보고, 가 본 후에 네가 결정해라."


2시간의 부모님과의 언쟁이 끝난 후, 내 기력은 빠질 대로 다 빠진 상태에서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아빠는 이미 출근하시고, 엄마는 학교 잘 다녀오라며 먼저 나가셨다. 그렇게 혼자 지하철에 탔다. 학교 가기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그 사이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사실 근데 이때도 이미 마음의 거의 90%는 자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 특히 엄마만큼은 내가 그냥 이 학교에 다니길 바라셨기 때문에, 그게 마음에 많이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교에 도착했다. 역에서 학교까지 운영하는 셔틀이 있었다. 그곳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정했다.


"자퇴해야겠다."


버스에 올라, 학교에 금방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입학처로 가서 문을 열었다.

개강날 아침 9시였다.


"저.. 자퇴하러 왔는데요.."

"몇 학년이세요?"

"아... 그 저 신입생입니다.."


직원 분이 조금 당황하신 것처럼 보였다. 개강날 아침부터 신입생이 자퇴하겠다고 찾아왔으니, 당황할 법도 했다. 자퇴를 하려면 지도 교수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도 교수한테 향하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자퇴하려고요. 등록금 환불받을 계좌 번호 좀 알려주세요."

엄마가 대답하기까지 조금의 침묵이 있으셨다.

"그래... 국민은행 3..."


그리고 지도 교수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갔다.


"학생 왜 왔는가?"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신입생으로 입학한 서유덕이라고 합니다. 제가 자퇴하려고 하는데, 교수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허허..."


교수도 매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고서는 나에게 왜 자퇴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거기에다가 대고 이 학교에 다니기 싫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다.


"아.. 다시 수능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자네 나이로 봐서는 재수생인데, 또 삼수를 하려고 한다고? 나는 말리고 싶네만.. 게다가 자네가 자퇴하게 되면

우리 학과에 결원이 생겨. 그럼 학교 측에도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셈이야."


교수도 자퇴를 만류했다. 하지만 내 의지가 확고하자, 결국에는 서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입학처에서 자퇴 원서를 작성한 후, 나는 학교에서 자퇴를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뭔가 커다란 뭔가가 내 앞을 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매우 불안했다. 너무 대책 없이 자퇴한 건 아닐까, 이걸 또 부모님한테 어떻게 설명할까.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이제 어떠한 계획을 세워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삼수는 해야겠는데, 너무 대책 없이 학교부터 나와버린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저녁에 도저히 부모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집에 있는 게 두려웠다. 


나는 그래서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핸드폰도 두고,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편지의 내용은 한 두 달 정도 집에서 나와 혼자 공부하다가 생각도 좀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집을 나와, 고3 때 일했던 주유소로 향했다. 주유소에는 일하는 분들이 사시는 숙소가 있다. 점장님께 부탁해 거기서 두 달 동안 일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내가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알고 지낸 영어 선생님이 계시는 학원으로 향했다.


 이 분은 나한테 거의 삼촌 같은 분인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 잘 믿고 따르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지금 내 생각과 상황을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나를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수 있는 분들 중 하나인 영어 선생님의 조언이 필요했다.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여태까지의 상황과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선생님도 매우 당황하셨다. 그러고서는 처음에는 나한테 집에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근데 내 의지가 확고하자, 선생님도 더 이상 그런 나를 말리시진 않으셨다. 그러고선 내 손에 돈을 쥐어 주시면서  이거로 오늘 저녁이라도 사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학원에서 나와, 다시 주유소로 향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동네, 수 만 번은 걸었던 동네 길인데도,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끝도 없이 들었다. 삼수한다고 해놓고, 1분 1초를 아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지금 집까지 나와서 알바까지 병행하며 공부를 하겠다는 건 내 의지에서는 분명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유소 숙소에 돌아온 후, 미칠듯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머리가 새하얘지며, 숨도 잘 쉬기가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다.


나는 이 불안을 좀 가라앉혀 보겠다고 서점으로 향했다. 책 사서 뭐라도 끄적거려 보면 불안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수학의 정석을 사고 서점을 나가려던 찰 나에,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서점을 나올 때는 스님의 책도 내 겨드랑이에 끼워져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수학 문제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가 않았다. 주유소 숙소의 방은 정말 옷장과 책상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였다. 좁은 방으로 들어오니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때 스님의 책을 펼쳐 읽어 보았다.


책 안에는 따뜻한 말들과 조언이 가득했다.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나에게는 책의 말들이 더욱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다 보니, 한 시간 만에 책의 반을 읽었다. 책을 덮을 때 즈음에, 나도 나중에 이런 멋진 사람이 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벌써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금방 잠에 든 나는,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깨, 이유 모를 구토와 설사를 했다.  

그렇게 새벽에 한바탕을 치르고 난 후에, 다음날 아침 7시에 공부를 하겠다며 눈을 떴다. 일어나서 수학 문제를 다시 풀었다. 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갑자기 미칠듯한 불안이 또 올라왔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그 방에서 혼자 방방 거렸던 기억이 난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어차피 아무도 없을 집에 잠시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 가면 뭔가 불안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집, 내 방 침대에 걸터앉으니,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너무 무모한 일들을 벌인 것 같았다. 감당할 용기도, 의지도 없으면서, 그냥 내 기분에만 의지해 선택한 건 아닌지, 괜히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건 아닌지와 같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평생을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서 해왔더니, 이제 막상 나에게 뭐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앉아 있다 보니, 알바를 하러 집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다시 열심히 차를 닦기 시작했다. 알바 한지 두 시간 정도 즈음 지났을 때, 갑자기 누가 내 모습을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이었다.


"유덕아, 집에 가자. 어제 선생님이 어머니께 전화드렸다. 네가 집에 돌아오면 좋겠다고 그러시더라."


당연히 처음에는 안 간다고 거절했다. 알바도 오늘이 첫날이고,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고, 나온 지 하루 만에 들어가면 부모님께서 나를 뭐라고 생각하시겠냐고 말했다. 불안했지만, 돌아갈 순 없었다.

선생님은 어머니께서 괜찮다고 하셨다며, 점장님께는 자신이 삼촌이라고 하고 사정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점장님께 사정을 말했고, 결국 선생님의 지독한 설득 끝에 오늘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약속을 해버렸다.


그 날 알바가 끝나고, 숙소에 있는 짐을 전부 챙겨, 밖으로 나와 점장님께 인사드리러 나왔다.

점장님은 오늘 일당을 봉투에 담아 건네시며,


"대견한 녀석. 건강하게 지내고 시험 보고 아르바이트하고 싶으면 연락해라."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하며, 주유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늦은 새벽, 조용히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자고 계셨고, 누나는 나에게


"왔냐? 오늘은 일단 자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짐을 풀고, 바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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