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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22. 2018

21살, 공황장애 - (1)

예상 밖의 결과, 삼수 결정

시간이 지나, 나도 수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고, 정시 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서울권 대학에는 지원하지 못했지만, 또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해나간다면,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1차 합격 발표날이 왔다. 나는 가, 나, 다 세 군에서 모두 경기도권의 대학에 지원했고, 국어 성적이 낮게 나오는 바람에 교차지원을 해야 했지만.. 가, 나 군에서 내가 이과 전공 중에 흥미가 있는 학과에 적정 지원을 한 후, 다 군에서는 하향으로 내가 별로 원하진 않는 학과지만, 취업에는 강세가 있는 전공에 지원했다.


사실 정시 지원을 하고 나서 합격 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가 군이 경쟁률이 조금 높아 불안하긴 했지만, 나 군에서의 합격률이 높았기 때문에, 가 군에서 합격 소식이 나면 좋은 것이고, 안돼도 나 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 군은 거의 쳐다도 보지 않고 지원을 했던 것도 있다. 


"제발.. 그냥 빨리 합격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합격 당일날, 컴퓨터를 켜고 내가 지원한 대학들의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 보았다. 먼저 경쟁률이 높아 적정 지원이었지만 조금 불안했던 가 군. 


'귀하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하.. 씨.."


짜증은 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에겐 나 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바로 나 군에 지원한 대학의 합격자 명단으로 들어갔다.


'귀하는 예비 번호 14번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대학에서 예비 번호를 받았다. 바로 검색을 해 작년에 예비 번호가 몇 번까지 돌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작년에는 내가 받았던 예비 번호보다 많이 돌았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추가 합격 발표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그냥 안전빵으로 지원했었던 다 군. 


'귀하는 예비 번호 3번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하향으로 지원한 대학에서 조차 예비 번호를 받았다. 


부모님께 합격 결과를 알려드리고, '가 군에서는 불합격을 받고, 나, 다 군에서는 예비 번호를 받았는데, 작년까지 다 이 번호보다 훨씬 많이 추가 합격이 돌았다'라고 말씀드렸다. 


합격 발표가 있고 난 얼마 후, 재수 학원 반 회식이 있었다. 재수할 때도, 중요한 시험 본 날 2번 정도 회식을 하긴 했지만, 이번 회식은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참석하기로 해서, 다들 수능 보고 어떻게 지내는지, 합격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수 있게 되어 신났었다.


 다들 술도 들어가고, 웃고 떠들다 보니, 이래저래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는 이틀 뒤 바로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어서, 중간중간에 술기운도 좀 깰 겸,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해야 해서 바람을 쐬러 자주 밖에 나왔었다. 다른 친구들도 중간중간 하나씩 바람을 쐬러 나온 친구들이 한 둘씩 있었는데, 밖에서는 조금 더 사적인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로의 합격 여부에 대해서는 꽤나 예민한 주제일 수도 있었기에, 서로 쉽사리 식당 안에서는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바람을 쐬러 나올 때마다, 조심스럽게 친구들의 근황과 합격 결과를 물어봤었다. 나는 우리 반 친구들이 재수 기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얻길 바랐다. 친구들에게 합격 결과를 물을 때면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이 정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지만, 정시 성적이 낮아서 걱정했지만, 논술에 기적적으로 합격한 친구부터, 정시 성적이 잘 나와 담임 선생님과 계속 어느 대학에 갈지 씨름하고 있는 친구, 그리고 제일 마음이 아팠던 소식이었던 삼수를 결정한 친구들까지. 다양한 결과들이 있었다.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가 이것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수능이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바라본 우리 반 아이들은 근 1년 동안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개인 개인이 엄청난 노력을 한 모습을 보았다. 최고의 결과는 얻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들이 한 노력에 대해서는 결과를 가져가길 바랐다.


그렇게 반 이상은 다들 취한 상태로, 또 보자며 헤어졌다. 나는 그리고 이틀 후 제주도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 사이 다 군에서는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사실 다 군은 별로 내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나 군 합격을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생각 외로 예비 번호가 잘 돌지 않았다. 거의 문 닫고 들어가야 되는 가능성까지도 고려를 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 진짜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머릿속으로 계속 이렇게 되뇌었다. 뭐하나 쉬운 게 없다고, 나도 가끔은 좀 좋게 좋게 편하게 갈 수는 없는 거냐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서 다녀온 후에는, 또 바로 동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어서, 정시 합격 발표를 내가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좋은 소식이 있으면 대신 확인하고 문자 준다고 하셨다. 


여행을 간 동안에도 계속 대학 생각이 나서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각종 수능 커뮤니티에 들어가 여러 글들을 읽어 봤었다. 나 군의 마지막 추가합격 발표날은 제주도에서 돌아오기 이틀 전이었다. 끝내 아빠한테 합격 소식을 전하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설마 설마 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가장 흥미가 없고, 집에서도 제일 멀며, 가기 싫었던 학교만 합격이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대학에는 거부감이 커졌다. 흥미도 없고, 배우기도 싫은 과목을 4년이나 배우러 다니는 게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재수 이상으로는 더 이상 입시를 할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대학에는 무조건 진학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합격한 학교를 가지 않으면, 병역 문제를 해결하거나, 삼수를 하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삼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도저히 부모님께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쉽긴 하지만, 이 학교의 취업률과 내가 진학한 학과는 취업에 상당히 강세인 학과였기 때문에, 나중에 좋은 직장을 가지면 된다면서 대학 가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셨다. 부모님은 이제 내가 대학에 간다며, 좋은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 신발 등등 많은 걸 사주려고 하셨다. 아들의 새시작을 지원해주신려고 하신 것이다. 나는 당연히 대부분의 것들을 괜찮다며 거절했다.이런 부모님한테 도저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망설이고 있던 찰나, 개강 전 날인 3월 1일, 오늘만큼은 진짜 꼭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결국 폭탄선언을 하고 만다.


"저, 이 대학 안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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