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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25. 2018

21살, 공황장애 - (6)

미국행을 결심

공황 장애를 본격적으로 정신과에 통원하면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나는 학원비를 환불받기 위해, 다시 학원을 방문했다. 짐을 싸고, 부장 선생님을 만나 아버지와 상담했다. 부장 선생님은, 내가 들어온 첫날부터,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들어오고, 삼수생인 나를 따로 잘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비록 그곳에 3일밖에 있지 않았지만, 학원에서 단연 내가 제일 의지하고 따르던 사람이었다.


아빠가 내 사정을 선생님께 얘기하셨다. 내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셨다. 그 당시에도 나는 손을 떨고 있었다. 선생님도 내 상태를 보시곤, 아쉽다면서, 일단은 건강이 먼저니, 당분간은 입시나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 같은 건 싹 잊어버리고 지내라고 조언해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내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이없게 끝나버린 내 입시. 


'나는 대학 갈 운명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많이 들며, 점점 대학 진학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다. 거의 2년 동안 내 모든 관심과 노력을 대학 입시에 쏟았는데도, 이제는 나에게 대학이란 크게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다.


공황 장애라고 판정을 받고 나서, 나는 가족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내가 공황장애가 생겼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숨기고 싶었다. 한동안은 친구들도, 친척들도, 내가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마 친척들은 몰라도 친구들은 공황장애라는 것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몇몇 친구들한테 처음으로 공황장애라고 밝혔을 때, 친구들도 이 질병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는, 여름 방학이라 친구들이 신촌의 술집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그 당시 공황 초기였기 때문에, 술이 쥐약인걸 알았던 나는 연신 거절했다.


"아.. 진짜 안 간다니깐... 나 공황이라 큰일 날 수도 있어."

"야, 거기 분위기 끝내줘. 가면 진짜 재밌어."


나는 원체 정신없는 곳에 가서 술을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동네에 친구 놈들 몇 불러놓고, 조용히 친구들끼리 막걸리나 마시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라, 원체도 가기 싫은데, 공황까지 온다는 두려움에 계속 버텼으나, 녀석들이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 조르고 졸라 결국 신촌으로 가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술집에 들어갔을 때는 더욱 정신이 없었다. 안에는 껌껌하지, 정신없는 노래와 함께,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까지. 나는 주머니 안에 비상용으로 챙겨 온 약을 만지작 거리며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사람들이 빈 공간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좁아터진 데서 어떻게 무슨 춤을 추겠다는 건지, 너도 나도 일어나서 춤을 추러 나갔다. 친구들도 나가서 춤을 추겠다고 뛰쳐나갔다. 나에게 잘 따라오라는 말 하나만 남기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야잇..."


친구들을 놓친 나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혼자 앉았다.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니깐 정신이 더욱 없었다. 


"컼..."


갑자기 숨이 막혔다. 공황이 왔음을 직감했다. 나는 사람들을 밀치며, 헐레벌떡 뛰어 나갔다. 아무 계단에나 걸터앉고, 숨을 껄떡껄떡 쉬기 시작했다.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신촌 사람도 많은 길바닥에서, 혼자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누가 나를 도와주지? 내가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켰다.


다행히, 5분 이내에, 내가 없어졌음을 안 친구들이 밖으로 나왔다. 나를 발견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가지고 왔다. 봉투를 가지고 내가 안정적으로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마 녀석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호흡을 진정시키고, 미안하다며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아 지하철 역까지 와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다. 그 날 이후, 내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내가 공황장애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더욱 치료에 전념하며 5,6월을 보냈다. 치료를 받던 와중,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변의 환경을 잠시 바꿔보는 건 어떨까? 4월에도 홍콩에 다녀왔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했잖아.

이번에도 여행을 다녀와보는 건 어때??"


여행이라..기왕 가는 거 길게 가서 많은 걸 좀 잊고 오고 싶었다. 내 충격적인 경험들을 씻어낼 수 있을 정도로, 꽤 긴 기간이며, 재미도 보장된. 시간은 2주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 머릿속으로 언젠가 해보겠다던 미국 로드트립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며 언젠가 꼭 놀러 오란 말을 하고 간 친구가 생각났다. 언젠가 찾아뵙겠다던 외가 친척들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미국행을 결정했다.


며칠 뒤, 나는 미국에 다녀오라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했다.


"야, 나 미국 간다."

"진짜? 언제 올 건데?"

"몰라. 아직 비행기 표 안 샀는데, 한 2주 정도 있으려고. 너 근데 로드 트립 해볼래?"


민규와 얘기를 마친 후, 바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계신 둘째 이모와 하와이에 있는 사촌 형에게 전화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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