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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26. 2018

21살, 공황장애 - (8)

노력

남아도는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알바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뭔가 자기 계발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노트를 피고,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냥 일상에서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라던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던가와 같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가장 실행하기 쉽고, 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3가지 활동을 찾았다.


1. 영어 회화 배우기

2. 격투기 배우기(다치지 않는 선에서, 내 눈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가정 하에.)

3. 단체에서 상담 프로그램 들어보기


나는 평소에도 영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입시 영어가 아닌, 진짜 원어민들이 쓰는 영어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 당시 SNS에 영어 회화 스터디들의 광고를 엄청나게 했었는데, 나도 평소에 자주 접했었던 스터디 플랫폼에 영어 수업을 신청했다.


운동은 꾸준히 해왔지만, 내 눈 건강 때문에, 계속 못하고 있었던 운동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격투기였다. 얼굴이나 머리, 눈을 절대적으로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나는, 서로 치고받고 때리는 격투기 운동 특성상, 내 눈 건강에 치명적일 것 같아 항상 배워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근데 이걸 잠깐이라도 배워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눈을 절대적으로 보호한다는 스스로의 다짐하에 잠깐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었던 단체에서 상담 프로그램 듣기. 사실 프로그램 듣기보다는, 이 곳에서 여는 단체 상담 프로그램이 있었다. 금요일 아침 시간대에 위치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이 시간에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우리 부모님 나이 때의 분들이거나, 은퇴하신 분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 말고, 주변의 어른들 말고, 다른 어른들이, 내 얘기, 내 상황, 내 배경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당히 궁금했다. 


또한,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어떠한 생각, 관점,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많이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단체에서 그룹 상담 프로그램을 듣기 시작했다.


일상에 새로운 일정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처음 접하는 경험들이다 보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해보고 싶던 것들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매일매일 체육관으로 운동을 하러 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 회화 수업과 그룹 상담을 갔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 재미도 상당했다. 체육관에서는 주로 30~40대 직장인들을, 영어 회화에서는 20대 중후반의 대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을 그룹 상담에서는 40~50대 부모님 나이뻘의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얘기, 경험, 가치관, 생각들이 있었다. 정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너무 재밌었다.


특히 그룹 상담에서는, 내가 살아오면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악착같이 살아서 이제는 나름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연을 가진 분부터,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뻔한 사연을 가진 분,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겪고 있고,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하신 분, 죽을뻔한 경험을 몇 번이나 넘기셨던 분까지.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티비에 나올법한, 책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을 실제로 접하게 되니, 처음엔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 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하는데, 그 감정들을 내가 감당해내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각자의 사연에 무게가 있다면, 확실히 내 사연에 비하면 이 분들의 사연들은 훨씬 무거운 것들이었다.


티비에서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게 되거나, 책에서 슬픈 이야기를 읽게 된다거나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직접 마주하고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 힘들고 슬펐던 감정들이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그룹 상담은 내 가치관, 시야,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으며, 내가 진정으로 살면서 무엇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상담에서의 여운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 보면, 다음날 영어 회화 수업에 가야 했다. 영어 회화 수업은 대부분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회화 수업을 하다 보면, 다들 각자의 근황을 얘기하는 시간에 대부분 대학생활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듣다 보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나도 다른 또래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에 갔다면, 이제 중간, 기말고사라며 불평하고, 학교 축제에서 연예인을 봤다는 얘기도 신나게 하고, 동아리 활동 한 얘기도 하고, 대학 동기들과 술을 진탕 먹었다는 얘기도 하고, 어제는 늦잠을 자느라 자체 공강을 해버렸다는 말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그들과는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상을 채워나가다 보니, 금방 9월, 10월이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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