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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Dec 30. 2018

22살, 유학 -(4)

행복했던 여름

나는 다시 상담소에 다니며 다시 공황 치료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내가 왜 유학에 가고 싶고, 지원 방법, 생활비, 학비와 같이 유학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대량의 정보를 모아 놨던 터라, 자료는 금방 만들어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자료를 드리고, 친구들과 1박 2일 전주로 여행을 떠났다. 나도, 부모님도 서로가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전주에서 돌아왔을 때는, 부모님에게서 원하는 방식으로 한번 해보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주변의 도움과 함께 혼자 학교 지원에 필요한 절차들을 하나둘씩 해나갔다.


그렇게 지원을 혼자 준비하다 보니, 금방 5,6월이 지나갔다. 공황 증세도 상담소에 다니기 전보다는 많이 호전이 되었다. 8월에 진짜 출국을 해 미국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네를 떠나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 지낸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사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와 설렘보다는 겁이 났었다. 막상 가려니까 좀 무서웠다. 하루는, 자기 전에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공황 증세가 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침, 나를 보러 오신 엄마가 나를 발견하시고 무슨 일 있으셨나면서, 나를 진정시켜주셨다. 


엄마는 조심스레 많은 일들이 지나고 막내인 내가 이제 새 출발을 해 기쁘다고도 하셨지만, 동시에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많이 서운하다고 하셨다. 


"뭐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서운해요."

"그래도..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 아빠 품을 떠나본 적 없는 아들이 떠난다고 하니까 좀 서운하네."


엄마는 그 이후, 여태까지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엄마가 느끼시고 생각하신걸 나에게 말씀하셨다. 침대에 걸터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셨다. 엄마도, 아빠도, 그 시간들이 힘드셨지만, 결국에는 다 지나,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다. 


"엄마는 유덕이가 그 일들을 겪고 나서, 정말 많이 성숙해지고, 성장했다고 생각해. 아빠도 가끔 말씀하셔. 유덕이가 많이 어른스러워졌다고."

"...."


나는 말없이 그냥 침대에 누워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엄마, 아빠도 많이 변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내가 수능을 준비할 때부터 그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부모님도 나도 좋은 방향으로 많이 변한 것 같았다. 


"너무 잘할 필요 없어. 엄마가 항상 얘기하잖니? 인성이 먼저라고. 성실하고, 착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가 하는 일하면 되는 거야. 지금 전 대통령들 봐. 국가 최고의 자리인 대통령까지 올라가도, 죄지어서 감옥 가고 하잖니.

나는 적어도 우리 아들이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착하게 자라주어서 너무 고맙다. 요새 엘리베이터 타면 그 집 아들 왜 이렇게 착하냐고 요즘 애들 중 보기 드문 애들이라고 막 칭찬하시더라. 엄마가 그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니."

"......."


엄마가 그 말을 하셨을 때는 아무 말없이 그냥 듣고만 있던 나였지만,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님 속도 많이 썩이고, 항상 게으르고, 덤벙대는 철부지 아들로 부모님이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계속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다. 계속 나에 대해 좋은 말들을 쏟아 내셨다. 엄마만의 생각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많이 들어본 적이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굉장히 안심되고, 힘이 되는 말들이었다.


엄마는 마지막에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가셨다. 엄마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불을 끄고 창문 밖으로 조용한 동네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여름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동네는 조용했다. 멀리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참..."


평화로운 분위기와 함께, 엄마의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마음속으로 너무나 행복한 느낌과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 대할 때 감정적일 때가 많고, 부족한 점도 너무 많고, 과거에는 정말 잘못된 말들과 행동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했었다. 지나온 일들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나를 좋게 봐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더욱 겸손하고 친절해야 함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공황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미국에 떠나기 전 소중한 사람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뜨거운 여름이 끝나갈 때쯤, 미국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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