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유학한 것을 후회한 날
어쩌면,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겁을 먹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내가 유학하기로 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다. 솔직히 당장 그만둘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5월의 뉴욕, 뉴욕도 여름을 맞이하기 시작해 한참 추웠던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나 또한 날씨가 풀리면서 한창 들떠있었는데, 1년 동안 가지 못했던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 날짜가 점점 종강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만날 사람들, 미국에 있으면서 하지 못했던 것들, 이번에 가면 하려고 계획했던 것들을 머릿속에 잔뜩 생각하며, 나는 하루하루 종강과 함께 한국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친구들이랑 피시방도 가고, 술도 진탕 마시고, 코인 노래방도 가고, 재밌겠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한국에도 되게 떳떳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점과, 스스로도 꽤나 느낄 정도로 늘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1년 동안 유학생활을 정말 잘 끝마친 것 같아 한국에 돌아갈 때는 금의환향(?)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정말 오랜만에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렘이 가득 차서인지, 너무나도 힘들었던 14시간의 비행이 이번엔 참으로 짧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도착한 한국, 발걸음을 빨리해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타고,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빠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후에, 눈을 붙였다. 눈을 떠보니 도착한 동네, 1년 사이에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동네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빠가 나를 맞아주셨다. 아빠는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셨다. 서로 무뚝뚝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애정 섞인(?) 인사를 마친 후, 우리 부자는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주차하고 들어갈 테니까, 먼저 짐 가지고 들어가."
"알았어요."
오랜만에 보는 아파트, 그리고 이제 엄마를 만날 생각에 너무나도 들떠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지낼 때는 몰랐는데, 부모님 곁을 떠나 지내보니, 지난 1년간 부모님이 정말 많이 그리웠다. 영상통화를 해도, 직접 곁에 있지 못해 부모님이 참으로 그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가,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져 있었다. 안에서 엄마가 나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비밀번호를 바꿔서. 잠깐만 엄마가 나갈게~"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 1년 동안 떠나 있었던 그리운 나의 집, 나의 방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문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자, 두건을 쓴 엄마가 나오셨다.
'음?'
모든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으로 정말 아니길 빌었다. 어쩌면, 겨울 방학에 눈 오는 날 미국에서 방 안에 틀어박혀 보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나오던 장면과 똑같은 상황이 내 앞에 벌어졌다.
"일단 밥 먹자 아들. 배고플 텐데. 짐은 이따 풀고, 밥부터 먹자."
"..."
밥을 먹는 동안, 엄마의 두건을 몰래 유심히 보았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엄마는 지금 머리카락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젓가락을 잡고 있던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애써 꾹 참으며,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았다.
밥을 코로 넘겼는지 입으로 넘겼는지 모른 채 방에 조용히 들어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캐리어 안에 있는 짐을 꺼내고는 있는데, 그냥 생각 없이 밖으로 꺼내기만 할 뿐, 내 신경은 온통 엄마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쏠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마다 부모님에게 영상통화가 왔었던 나인데, 엄마가 거시던 아빠가 거시던 보통 두 분 다 얼굴을 보여주고 끊으시는데, 3월 정도부터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머리까지 깎을 정도면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는 아닐까?'
'왜 나한테 숨기셨던 거지? 내가 유학 생활하는데 지장이 갈까 봐?'
'심각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왜 아무도 나한테 얘기를 안 해줬지?'
'미국에 있는 가족들도 아무도 모르던데.. 나만 모르던 건가?'
'이따 밤에 조용히 누나한테 물어봐야겠다.'
짐을 풀고 있는 와중에 아빠가 들어오셨다. 아빠는 예전과 다름없이 엄마와 얘기를 나누며 티비를 켜셨다.
짐을 다 풀고, 대충 씻고 나오니 벌써 10시 반 정도가 되었다. 씻고 나오자 아빠가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방에 들어오셨다. 아빠는 조심스레 엄마의 상태에 대해 나에게 얘기하셨다.
엄마가 지난 2월 정도에 가슴에 종양을 발견해,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는 것, 호르몬 때문에 생긴 암이고, 꽤나 공격적이고 전이가 빠른 암이지만 초기에 운이 좋게 발견해 다행히 다른 곳에 전이는 되지 않았고, 이제 힘든 고비는 넘기고 예후를 보면 된다는 것.
나에게 숨기신 이유는 내가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엄마의 상황을 알게 되면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늘이 도운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가, 정말 심각하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안도의 눈물인지, 아니면 엄마가 아프신 것에 대한 슬픔의 눈물인지, 오랜만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한편으론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많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모를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엄마가 많이 아프실 때 내가 옆에 있어야 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엄청나게 몰려왔다. 그날, 나는 유학에 가기로 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크게 후회를 했다.
어렵게 선택한 결정이고, 절대 후회 남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들로 고군분투한 1년의 많은 순간들이
후회스럽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껴졌다.
아빠도 일하시면서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고, 간호하고 힘드셨을 텐데, 조금이라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가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가지 않았다면, 이 곳에 남았다면,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엄마를 많은 시간 동안 간호할 수는 있었을 텐데..'
정말 당장이라도 한국에 계속 남아있을 수만 있다면 남아있고 싶었다. 엄마의 상태를 보고 다시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유학이고 내 미래고 뭐고, 나에겐 엄마가 우선순위였다.
다행인 점은 내가 그래도 한국에 일찍 나와 긴 시간 동안 있는 점이었다. 엄마를 최대한 간호하고, 방학 동안 엄마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을 했다. 하루하루가 천천히, 느리게 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