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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Aug 12. 2019

23살, 유학에 대해 후회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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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아들이 와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엄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전날 밤 펑펑 울다 지쳐 잠든 탓인지, 깊게 잠에 들었다가 다음날 일찍 일어났다. 눈을 뜨니, 익숙한 내 방 천장이 보였다. 엄마가 아프신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많이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드디어 집에 와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은 새벽 5시 반이었다. 시차 때문인지 매우 일찍 일어났다. 배가 너무 고파 아침을 챙겨 먹고 있으니, 아빠가 일어나셨다. 


"오늘 엄마 병원 가야 되는 거 알지? 잘 모시고 잘 갔다 와."

"(끄덕끄덕)."


이제 엄마의 항암치료는 막바지 단계에 있었다. 이제는 내가 있으니, 일을 가야 하는 아빠와 누나 대신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가면 됐다.


밥을 먹고 난 후, 나는 짐을 싸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엄마 병원 가기 전에, 아침에 개운하게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엄마가 일어나 계셨다. 


"아들 아침 먹었니? 아까 육개장 끓여놓은 거 먹은 것 같던데. 설거지도 쌱 해놓고 갔네?"

"응, 육개장 먹었어."


엄마는 소파에 앉아 인간극장을 보고 계셨다. 나도 그 옆에 소파에 누워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그래서, 전날 밤에 아빠한테 다 들었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마는 한참 동안 어제 아빠에게 듣지 못했던 당신의 이야기를 말하셨다. 항암 치료 과정과,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있었던 일들, 나에게 왜 숨기셨는지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말없이 엄마가 앉아계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누워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없이 엄마가 하시는 말을 듣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래도 힘든 시간은 다 지나갔어. 이제는 막바지니까.. 딱 유덕이 왔을 때 정말 좋아지고 있던 거야. 네 아빠랑 이모가 고생 많이 했지." 

"많이 힘들었는데,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다 잘 버텨냈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아들이 와있으니까 엄마가 참 기쁘네.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아."

"그니까 아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도 방학에 한국에 나왔으니까 시간을 잘 활용해야지. 앞으로 뭐할지 잘 생각해봐."


그 후, 나는 방에 들어와 엄마가 하신 말씀을 곱씹어보았다. 집에서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무언가를 해야 엄마도 더 부담 없이 지내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무엇을 해야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음... 일단 운전 연습도 해야겠고.. 일본어도 한번 배워볼까? 운동은 당연히 계속하는 거고.."

"만나야 될 사람들도 꽤 있고 엄마 간호도 해야 하고 하니까.. 최대한 지장이 안 가게.."


이래저래 운전 학원과 일본어 학원을 알아보던 와중에, 엄마 병원에 갈 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오늘은 포트를 빼는 간단한 수술을 한다고 했다.

원래는 잘 빼지 않는 포트지만, 엄마가 너무 불편하다고 느끼셔서 담당 의사 선생님과의 상의 끝에 빼기로 결정하신 것이었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신 이후로 계속 간호사 선생님에게 이래저래 질문을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 안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왜 이리 수술 대기시간이 지나며 투정을 부리시던 할아버지와 그걸 달래는 아들, 환자복을 입고 엄마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중에서는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보고 있다 보니 또 사색에 잠겼다.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이 스스로 당신들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단정 짓고 남은 날을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어떤 기분일까. 내 또래에 저렇게 아픈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참으로 불공평한 생각도 들었고, 안타까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저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얼마나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아플까?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아프고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부질없어지는데, 나를 비롯해 사람들은 왜 모두 그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상처 내가면서 살아가는지..


이렇게 생각에 꼬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졌는데, 결국에 결론은 딱 하나였다. 

미국 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써야겠다는 것.


혼자 사색에 빠져있던 중, 아빠가 병원에 도착하셨다. 

아빠와 기다리다 보니 1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엄마가 나오셨다.

마취를 하셔서 그런지 피곤해 보이셨다. 아빠가 병원에서 밥을 먹고 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이래저래 6월부터 다닐 학원들을 등록했다. 2주 정도 남은 5월은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기로 결심했다. 나도 시차 적응도 해야 하고,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되기도 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아 조금은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이제는 표적 주사라는 것을 긴 시간에 걸쳐 맞으셔야 한다고 하셨다.

다시금 엄마가 참으로 강하신 분이란 걸 느끼게 된 계기였다. 엄마가 잘 버텨내시는 만큼, 나도 옆에서 엄마를 잘 보필해서 엄마가 다시 적어도 내가 미국에 가기 전에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으실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이 말을 계속 마음속으로 되뇌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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