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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Aug 18. 2019

23살, 유학에 대해 후회하다. (4)

떠나보낸다는 것

다음날, 아직도 취기가 남은 채 침대에서 눈을 떴다. 시간은 벌써 아침 11시, 평소보다 많이 늦은 기상이었다. 취기 때문인지, 어제의 경험 때문인지, 머리가 멍했다.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자, 엄마가 아침을 먹으라며 나를 부르셨다.


"아들~ 아침 먹어."


나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물으셨다.


"오늘 갈거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누구랑 갈 거야?"

"혼자."

"거기서 자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거기 가면 친구들도 다 있어서 괜찮아. 내일 올 때는 동네 친구랑 같이 올 거예요."

"그래. 몇 시쯤 갈 거야?"

"점심 먹고 3시 정도에 가려고."


나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단 술을 좀 깨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짐을 싸고, 조금 쉬고 나니 금방 3시가 되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가는 길이 워낙 오래 걸리는 데다가, 오늘은 혼자 가서 많이 심심할까 좀 걱정이 되었다.


전 날엔 지하철을 타고 갔지만,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훨씬 빨리,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잠시 잠에 들었다.

조금 뒤 바로 눈을 뜨고, 나는 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전날보다 꽤나 빨리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어제 왔던 몇몇 친구들을 포함해,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 유덕~!"


친구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군인인데 청원휴가를 쓰고 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친구들과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묻고 얘기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재밌게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금방 갔다. 

그 날 저녁까지 남아있던 친구들은 전부 여기서 자고, 내일 발인 때까지 남아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에 친구들끼리 관을 들기로 했다. 친구들끼리 재밌게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있는 방으로 친구의 아버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아까 낮에 친구에게 수의를 입혀, 관에 넣었으며, 내일 화장을 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아버님은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있는 곳에서 나가셨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친구와의 이별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냥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들은 그날 밤을 새웠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 친구들은 눈을 붙이고,  몇몇 친구들은 새벽에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우리는 가볍게 씻고, 준비를 해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아침밥을 먹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고, 나와 관을 드는 친구들은 준비를 했다.


"자, 관 드시는 분들은 장갑 끼고 준비해주세요."


나는 장갑을 끼고 맨 뒤에 섰다. 무거울 거라 생각했던 관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이때까지도 친구와의 이별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관을 차에 실은 후, 화장하는 곳으로 향했다.


다들 전날 밤을 새운 탓인지, 다들 버스에서 잠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는지 모르는 화장하는 곳에 우리는 도착을 했다. 그곳은 다른 사람들의 곡소리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곡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를 비롯해 친구들이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관을 차에서 꺼내 옮긴 후, 우리의 화장 차례를 기다렸다. 다들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이제 점점 진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에, 머리가 멍했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친구의 화장 차례가 왔다.


우리는 관을 다시 꺼내어, 화장을 위해 관을 놓는 곳으로 관을 옮겼다. 나는 맨 뒷 줄에 서서 관을 들었다. 관을 들고 나오자, 친구들, 친구의 가족들, 친척들이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뒤로한 채, 관을 내려놓았다. 

관을 놓고 난 후, 나는 마지막으로 그곳을 걸어 나오며, 화장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친구의 관을 뒤돌아서 보았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잘 가라.. 형준아..'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장례식에 와서 한 번도 울지 않았지만, 그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세상에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친구를 보낸 이후, 나도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울고 있었다.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 나는 밖에 나와 조용히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했다. 


혼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너무 허무했다. 이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계속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 너무 덥고 습했던 날씨였는데, 내가 울 때만 바람이 참으로 시원했다.

마치 친구가 나에게 슬퍼하지 말라며 위로해주듯한 바람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니, 내 눈물도 금세 멈췄다. 


그리고 친구와의 추억이 하나둘씩 다시금 생각나기 시작했다.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다. 너무 슬프고 힘들었지만, 후회 없이 친구를 보내줄 수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앞의 숲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소리, 나무소리가 참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와,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 화장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친구들과 이래저래 얘기를 하다 보니, 화장이 끝나고, 유골함을 받아 우리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다들 버스 안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나도 잠에 들어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잤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친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동네 친구와 동네로 향했다.

동네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시 잠에 깊게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순식간에 서울에 도착해있었다. 

우리는 다급하게 내려 동네로 지하철을 타고 향했다. 


동네에 내려 친구와 밥을 먹고, 집에 도착했다. 나는 짐을 풀고 다시 잠에 들었다. 아무래도 전날에 밤을 새운 탓인지 계속 졸음이 몰려왔다.


잠에서 깨고 난 후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정도가 되었다. 나는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오라는 엄마의 말에 짐을 싸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냥 멍했다. 잠에서 깬 탓인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계속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몸만 움직이는 듯했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꽤나 먼 시간이 지난 일 같았다. 그렇게 멍한 채로 운동을 하고, 씻고 나와, 왠지 모르게 코인 노래방이 가고 싶어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예전에 친구와 불렀었던 노래들을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친구랑 놀았던 추억들이 이제는 더 이상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코인 노래방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누우니, 다시 온통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그때, 불연 득 머릿속에서 해외에서 나와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만약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친구의 장례식조차도 못 왔을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때 두 번째로 유학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


나는 역시 정 붙인 사람들을 떠나 살 수 있는 성격이 못 되는구나라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후회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친구를 그리워도 하면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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