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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Dec 20. 2018

20살, 재수 도전기 - (4)

대망의 두 번째 수능 

그렇게 만족스러운 9월과 함께 동국대 시험을 치고 나서, 나머지 시험 개념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금방 11월이 왔다.  재수하면서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재미난 일도, 힘들었던 일도 다 지나면서 반에 있는 친구들, 형, 누나들과 너무 정이 들어서 이제 헤어진다고 하니깐 좀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준비는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최고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지만, 최선의 모습은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빨리 시험을 치고 놀고 싶었다. 시험 전 날이 오고, 다들 수고했다며 내일 시험 잘 보자고 서로 격려를 해주며 헤어졌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친구들은 지방으로 내려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내일 볼 시험을 준비 잘하자고 했다. 역시나, 긴장을 많이 하는 나는 전날부터 긴장이 엄청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와서 최대한 긴장을 풀고, 그 날은 일찍 잠들었다. 눈 감자마자 눈을 뜨니까 새벽 6시였다. 잠은 되게 잘 잤던 것 같다.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부모님이 차로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내 이번 시험 장소는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었는데, 시간이 꽤 있어서 차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긴장을 풀려고 했다. 시험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서 국어 문제를 미리 몇 문제 몸풀기로 풀어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반에는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현역 친구들인 것 같았다. 이제부터 완전 혼자구나 라는 생각에 긴장이 조금 가중되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기에, 침착하게 감독관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주의 사항을 알려주며, 국어 시험을 꺼냈다. 지난 9개월의 노력, 아니 근 2년을 이제 결과로 바꿀 차례이다. 최고는 못 되더라도 최선은 다 하자라는 말을 계속 되새기며 시험지를 받았다. 그리고 울리는 종과 함께 바로 스타트. 먼저 문학,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펼쳐서 풀었다. 문학을 다 풀고 나니 오히려 내가 평소에 풀던 시간보다 시간이 남았다. 침착하게 화 작문으로 넘어갔다. 화작문을 푸는데 계속 답이 똑같은 숫자가 반복되었다. 분명히 이게 답인데.. 불안이 슬슬 가중되기 시작했다. 문학에서 남긴 시간을 화 작문을 푸는데 확인하느라 여기서 다 써버렸다. 문법을 풀고 이제는 비문학 차례. 비문학을 읽는데 생각보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 시선 대각선 쪽에 위치한 친구가 자꾸 다리를 떨고 있길래, 내가 한번 쳐다봤다.그 친구가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내가 봐도 느껴질 정도로.. 


덩달아 갑자기 나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아 씨.. 또 시작이네 이거..' 생각했다. 또 글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멘탈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비문학 두 지문을 거의 찍다시피 풀어서 제출했다. 답안지를 내고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국어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른 과목에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일단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세 개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받아 든 수학 시험지. 수학이 제일 취약 과목이긴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숫자를 일일이 하나씩 다 세는 한이 있더라도 풀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랬더니 평소보다 많은 문제를 풀었다. 답이 확실하지 않았던 문제는 고난도 문제인 3문제 정도. 이 정도면 내 평소 실력치고 충분히 선방했다 싶었다. 수학이 끝나고 점심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않고 그냥 밥 먹고 영어 지문을 한번 읽어보면서 워밍업을 했다.


밥 먹고 잠이 올까 봐 초콜릿을 엄청 까먹었다. 이제 자신 있는 영어와 탐구 과목만 남았으니, 잘 마무리하면 올해는 어쩌면 정말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어 시험이 시작되고, 생각보다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시간 내에 간신히 다 풀어냈다. 영어는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뭔가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시험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멘탈이 부서지기보다는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후회 없이 바로바로 다음 과목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은 6,9월에 내가 실력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한 탐구 과목이었다. 진짜 이 과목만큼은 무조건 1등급을 맞을 거라고 다짐했던 과목이었던 만큼 아마 제일 열심히 풀지 않았을까.. 말을 정말 어렵게 꼬아놔서 시험 보는 내내 욕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은 다른 탐구 과목. 이 과목은 재수 동안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6,9월 나오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나와서 시간 배분부터 해서 정답이 불확실한 문제가 3문제나 되었다. 탐구는 한 문제 한 문제 틀리는 순간 엄청 치명적인 과목인 만큼, 거의 만점 받는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3문제나 답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해놓았던 아랍어 시험을 볼 차례였다. 아랍어는 물론 하나도 공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험으로 응시해뒀었다. 신중하게 아랍어 문제들을 찍고, 나는 엎드려서 시험이 끝났다는 생각에 엄청난 성취감과 해방감에 둘러싸여 있었다. 


첫 번째 수능과는 다르게, 9개월 동안 정말 고생을 해서인지, 해방감에 너무 기뻤다.


그렇게 시험은 종료되고, 나는 혼자 집에 가기로 했다. 집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가면서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분명 아랍어 시간에는 해방감이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집에 혼자 걸어오면서, 왠지 모를 허무감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참으면서 준비한 것인데 되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느낌..


집에 도착하니까 부모님이 수고했다고 나를 맞아주셨다. 특히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첫마디가 어떤 것일지 긴장하셨던 것 같다. 나는 자신 있게 첫마디를 뱉었다. 


'후회 없이 보고 왔어요.'


그제야 풀리는 부모님의 표정. 수고하셨다고 밖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피곤하다고 그냥 짜장면이랑 탕수육이나 시켜먹자고 했다. 밥을 먹고, 핸드폰을 키니, 친구들에게 연락들이 와있었다. 수능 잘 보라는 이미 대학에 간 친구들의 말부터, 오늘 잘 봤냐고 묻는 재수학원 친구들까지. 오늘만큼은 근데 수능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쉬고 싶었다. 머리를 비울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래서 답장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휴식을 취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두 번째 수능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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