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그리고 행복이 남은 시간

by 박정훈

흐르는 땀줄기를 타고 살갗 끝에 매달린 일상의 걱정들, 경쟁, 조급함을 짭조름한 바다 바람은 무심한 듯 흩어버린다. 물 회에 송송 떠있는 얼음과 빨간 육수는 내장 속에 남아 있는 더위를 얼얼하게 한다. 여름휴가를 위해 몇 시간 차안에 웅크려 불편했던 몸은 사라지는 일상의 잡념들이 비워놓은 자리로 채워지는 청량한 바다기운과 입속을 타고 내리는 시원함에 힘을 되찾는다. 장모님 무릎에 앉아 회한점 오물조물 씹으며 파란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들은 한시라도 빨리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어 안절부절 이다. 처음으로 아들, 딸, 손자, 사위, 며느리와 휴가를 함께 보내는 장모님 얼굴에 바다 바람은 환한 웃음을 새긴다. 나와 아내, 처남들과 처남댁은 관광지도를 보며 즐거운 휴가 일정을 그려본다. 결혼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처가식구들과 여름휴가를 같이 보낸다.


직장여름 휴가철이 다가오자 처남이 장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일이 바빠 손자 보느라 지친 장모님 바람한번 제대로 쐬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했는데 잘됐다 싶어 장모님 모시고 좋은 곳 다녀오라 했다. 나는 속초 근처에 콘도를 예약해 주었다. 하지만 장모님은 여행보다 손자 걱정이 먼저다. 아들이 유치원에 가기까지 아들은 한시도 장모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젖병을 물릴 때는 안고 있었고, 시장을 가고 집안 청소와 살림을 할 때는 업고 있었다. 아들은 할머니가 궁둥이를 토닥여 줘야만 잠이 들었고, 잠을 잘 때도 가끔씩 팔을 뻗어 할머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곤 했다. 명절에 본가에 내려가면 아들은 내 손을 잡고 이방 저방 다니며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찾곤 한다. 잠을 자야하는 아들에게 할머니의 不在(부재)는 큰 걱정거리다. 주말에 우리 부부와 같이 있을 때에도 잠을 잘 때면 아들은 할머니 방으로 향했고, 아빠와 엄마의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부모와 헤어져도 할머니 품에 안겨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장모님은 손자와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지, 여행을 가실 때면 항상 손자를 데리고 다니셨다. 아내는 내게 조심스럽게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여름휴가 같이 갈 수 있어?”

“잘 모르겠네.”

“작년에도 자기가 같이 휴가 안가서 엄마가 많이 서운해 하셨어.”

“몰랐네.”

“자기는 너무 무심해. 가끔은 가족도 챙기면서 살아! 회사 잘리면 가족만 남는 거 알지!”


아내 협박에 움찔했다. 아내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에 지금까지 경주마처럼 살아온 내게서 마음속 눈가리개가 떨어져 나간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며 세상을 내 중심에 놓고 살았다. 아내에게는 조금 있으면 좋은 세상 온다며 희망고문 가득한 변명을 했다. 성실하고 자기계발 잘 하는 남편이지만 아내에게 남편은 감정 없는 사이보그였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힘들다 불평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하고,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쉽다면 다 부자 될 거라며 엄살 부리지 말라고 했다. 장모님이 살림 다해주고 아이까지 키워주는데 뭐가 문제냐며 아내를 몰아 붙였다. 회사에서는 무한 장점이던 ‘합리와 이성’이 아내에게 상처였다. 욕심 가득한 견고한 벽돌로 단단히 쌓여 있던 벽에 ‘가족’이란 한마디로 균열이 생겼다. 성공이 분비하는 아드레날린이 마약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은 성공은 큰 성공을 원하고 더 큰 성공을 원하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갈수록 가족은 말 없는 장식품이 되어가고 있음이 보였다. 거북 등처럼 갈라지는 균열은 내 마음 사방팔방으로 틈을 가르며 질주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갇혀있던 감정들이 뿜어져 나와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큰 강을 만든다.


“회사에서 남는 휴가 다 쓰라고 하는데, 한 번 알아볼게.”

“이번에는 같이 가자. 자기가 멋진 휴가 계획도 세워봐. 그래야 동생들이 보고 배우지.”

“알았어.”

“자기가 같이 가면 어머니도 좋아하고, 아들도 아빠하고 좋은 추억 만들어서 좋겠다.”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아내는 처음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는 미안했다. 가족은 같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때 많이 만들어야 한다. 오늘을 미루면 내일은 또 미룰 이유가 생긴다. 나는 그렇게 몇 년을 미뤘고 아내는 참았다.


낯선 곳에 함께 있다는 동질감과 약간은 느슨해진 긴장감으로 여행은 물기 없는 밀가루 반죽같이 메진 관계를 끈끈하고 빈틈없는 찰진 관계로 만든다. 장모님에게 나는 일주에 한두 번 밥을 같이 먹는 週(주식)이였고, 아내가 나와 함께 외출하거나 얼굴 보고 이야기 하려면 바가지가 몇 번은 구멍 나야 했다. 아들에게 나는 가끔씩 방문하는 놀이 학습지 선생이었다. 집안의 家長(가장)이 아니라 항상 길을 떠도는 街長(가장)이었다. 여행은 길가로 떠나는 일이지만, 여행은 나를 길가에서 집으로 끌어 들였다. 행복은 다가가면 멀어지지도 않았고, 높은 곳에 매달려 있지도 않았다. 행복은 내 품에 안긴 아들의 심장소리에,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내 눈빛에, 사위를 배려하는 장모님 마음에, 이 모든 것을 품을 줄 아는 내 마음에 있었다. 내가 행복을 마음에 품으니 아내가 행복하다. 행복한 여자는 마음을 넓게 쓴다.


“식구들이랑 같이 여행 와서 좋은데 시어머니 어떡하지?”

“뭘?”

“괜히 미안해서. 어머니도 우리하고 여행한 적 별로 없잖아.”

“그러게, 다음 주는 연휴니까 대전에 한번 갔다 오자. 어구, 우리 마누라 철들었네.”

“철들긴 뭐가 철들어, 네가 나한테 잘하면 시댁에도 잘하게 되어 있어! 남자들은 바보 같아!”


시간은 참 빠르다. 처가식구와 첫 여행 때 보았던 올림픽이 올해 두 번째로 다시 찾아온다. 내 품에 콕 안을 수 있던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다. 30대 후반의 팔팔했던 나와 아내는 노년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날 밤 산바람, 바닷바람은 한 쪽으로만 고여 있던 생각을 흐르게 했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빨리 늙을 수 있다는 생각, 아내 손잡고 데이트 할 수 있을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 아들의 키가 나보다 커지고 아빠보다 친구를 더 많이 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짧았다. 후회하지 않으려 포기하고, 후회하지 않으려 더 붙잡기도 있다. 내 곁에 가족이 남아서 좋다. 아내와 이야기 거리가 많아서 좋다. 아들과 좋은 기억이 많아서 좋다. 부모님에게 무심하지 않은 아들이어서 좋다.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서먹한 사위가 아니어서 좋다. 여행이 만든 작은 틈이 행복한 변화를 주어 좋다. 생각은 찰나지만 선택은 결과를 바꾼다. 세월이 지나 작은 후회는 있지만 좋은 추억이 후회를 덮는다. 같이 밥 먹으며 살자! 얼굴 보며 살자! 이야기하며 살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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