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살이의 변명

by 박정훈

결혼을 하고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뱃속에 아이가 생기자 우리부부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아이가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다. 시험관으로 시작된 아이가 온전히 우리 곁에 오기까지는 거쳐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아내가 혹시나 힘들어 할까 걱정을 하셨다.


“다행이다. 임신이 되어서.”

“그러게. 지금부터 더 조심해야 된다고 하네. 아이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

“그래. 니 마누라 스트레스 안 받게 조심해!”

“나도 엄청 조심하고 있어.”

“할머니하고 사는 것 괜찮아. 아무래도 ”시“자가 들어간 사람보다는 장모님이 좋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장모님 요즘 일 다니시는데.”

“장모님 받는 월급만큼 드려. 나이 들어서 밖에서 돈 버는 것보다 손주 돌보면서 용돈도 버는 것이 낫지.”

“할머니가 실망하실 것 같은데.증손자 돌보신다고 엄청 기대하고 계신데.....”

“노인네가 꿈도 크네. 내가 말할게.”

“엄마가 딸이니까 잘 말씀 좀 드려줘.”


결혼한 손자 부부와 함께 사는 것이 좋으셨던 할머니는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어머니께로 내려 가셨다. 할 일어 없어진 할머니는 그 이후로 너무 빨리 늙으셨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내는 할머니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내 꿈에만 나타난 할머니는 아내를 꼭 안아주시고 가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모님이 주중에 집에 오셔서 살림과 아내를 돌봐주셨다. 아들이 태어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집근처로 이사 오셨고 아내와 아들은 그 집으로 갔다. 아이가 크자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옆 동네였지만 일요일 아들을 두고 올 때면 아이는 울고 떼를 썼다. 결국 살림을 합쳤다.


“처가살이 괜찮겠어?”

“별로 고민 안하는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 출장도 많고 회사 출근할 때도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오히려 너하고 애 걱정을 덜어서 좋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좋고.”

“자기 어머니는 어떠셔?”

“장모님을 더 걱정하신다. 사위 때문에 불편할까봐.”

“어머니가 더 잘 알겠구나. 아버님도 장모님 모시고 사셨으니.”


살림을 합치고 나니 모든 것이 안정이 되었다. 집안 살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행운이다. 하지만 행운은 공짜가 아니다. 행운을 붙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처가살이에서는 남자의 양보와 이해가 필수다. 양가 부모님에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섭섭함을 덜어내고 가정의 룰을 정하는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 엄마가 된 여자 인생은 힘든 일투성이다. 엄마는 학교에서 아이가 다치면 제일 먼저 전화를 받고, 매일 같이 아침에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아침밥을 먹이는 일을 반복한다. 아이가 아파 밤새 잠 못 들면 안고 달래는 것도 엄마다. 학원을 알아보고, 학원 숙제를 제때 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아이를 다그치는 것도 엄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잠을 안자고 기다리고, 맞벌이면 회사에 출근해서도 아이가 학교에 잘 갔는지 걱정하고 확인하는 것도 엄마다. 그런 아내에게 처가살이는 한 숨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인생은 이러냐?”

“뭐가?”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살림 다 해줘. 아내도 장모가 살림 다 해줘. 내가 만나는 여자가 어쩜 이리 성격이며, 인생이 비슷하냐.”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살림 못한다고.”

“너한테 애초에 그런 기대 안했다. 대신 돈 벌어 오잖아.”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다 잘하면 못써. 빈구석이 있어야 인간냄새가 나지. 네가 편해야 결국 내가 편하지.”

“그럼 그렇지. 결국 너 편하자고 처가살이 하는거지?”

“같이 좋잖아. 나도 너도 아이도 장인, 장모님도.”

“그렇긴 해.”


처가어른들과 살림을 합치고 나니 아이가 제일 좋아했다. 저녁시간이면 아이는 놀거리, 읽을거리를 한아름 들고 내게 왔다. 할머니는 맛있는 것 주고, 목욕시켜주고, 유치원 갔다 오면 맞아주기는 했지만 아이와 놀아주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이다. 엄마가 놀아주기는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아빠는 노는 방식부터 다르다. 엄마 놀이는 그림책보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이다. 아빠는? 일단 움직인다. 이불을 넓게 깔아 놓고 레슬링도 하고, 비석 넘어뜨리기, 비행기 태워주기. 모든 놀이에 움직임이 있다. 낮이면 아이는 놀이터에서 뛰어놀지만 모자란다. 세상이 해맑은 아이는 잠자기 전까지는 신나게 놀아야 한다. 엄마 체력으로 힘들다. 이쯤 되면 아빠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아빠는 다르다. 아빠의 소리에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이야기에도 흥미와 모험이 있다. 아들은 잠을 잘 시간이 되면 양손 위에 가득히 동화책을 안고 나를 보며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몇 권 만에 아이가 잠들 수 있을까? 읽다가 나도 모르게 졸고 있으면 아이는 침대 바닥을 두드린다. 정성스럽게 읽으라고.


“자기 참 신기해.”

“뭐가”

“딴 남자들은 처가살이 하면 힘들다고 하는데, 자기는 별로 힘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말이지. 청소만 안하면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

“정말 단순해. 자취할 땐 어떻게 살았어?”

“안하고 살았지.”

“자취방 깨끗했잖아?”

“네가 오는 날이 청소하는 날이지.”

“으그, 내가 못살아.”


가족의 끼니를 챙기는 일,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는 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간식을 주기, 아이에게 급한 일 생겼을 때 먼저 달려가야 하는 일들을 처가살이를 시작한 이 후로 일들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많이 해주셨다. 가끔 아내와 장모님이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 달그락거림은 있어야 사람 사는 집 같다. 육아의 문제로 시작한 처가살이지만 어느덧 십년의 세월에 가까워진다. 그 안에는 많은 사연이 있지만 집을 편안히 생각하는 아이를 보면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는다 했지만 삶의 모습을 조그만 다르게 보면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는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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