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에 앞서서
명절이 되면 여자들은 전부치는 냄새, 시댁의 불편함, 閑良(한량)으로 변하는 남자로 인한 갈등 이야기가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한다. 페미니즘과 미투로 인해 점점 명절이 남자에게도 힘겹다. 명절뿐만이 아니다. 육아로 인해 처가는 남자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요즘 남자들은 변하는 환경에서 또 다른 갈등과 부딪친다. 흔치 않았던 ‘장서 갈등’. 조선시대 이후로 모계 중심 사회에 익숙하지 우리나라 남자들은 당황스럽다. 환경이 이와 같아도 남자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처가살이 선입견 때문에 처가에 산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한다. 나는 처가살이를 한다. 하지만 처가살이는 부끄럽거나 힘겨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시대에 하나의 생활패턴일 뿐이다. 십오년을 넘게 처가어른들과 함께 살면서 느낀 이야기들. 처가와 시댁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 엄마와 딸 사이에서 박쥐같은 사위의 모습. 장인어른이기 이전에 남자로서의 동질감. 동네 형같은 철없는 아빠. 이 모든 모습을 더 늙기 전에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현대의 남자들에게 훈수를 두고 싶었다.
“이젠 적응하면서 살아라!”
생존은 강한 개체의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개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들의 삶은 멀리서보고 객관적으로 보면 아름답고 견딜만하게 보인다. 풍경을 조금만 헤집고 가면 가시덤불도 보이고, 앞을 막아선 바위도 보인다. 나는 풍경의 껍데기를 걷어내고 삶을 보이고 싶다. 삶은 다양해도 감정은 똑같은 것 같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삶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다르지 않다. 삶은 부처님의 말대로 苦海(고해)다. 그렇다고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 치유가 목적은 아니다. 다양한 삶 중에 한 모습을 비교적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는 자조적 표현일 뿐이다. 다만 넋두리 같은 이야기 속에서 단비처럼 찾아오는 유모와 행복에 한번이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이야기꾼의 보람이려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