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같은 삶

by 박정훈

모든 순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는 기쁨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걱정이 쓰여 있다. 삶의 한 순간에는 기쁨을 부르는 일과 걱정을 부르는 일이 항상 같이 있다. 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겼다. 분만실에서 처음 아이를 맞이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를 닮은 또 다른 생명. 평생 내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 신기하고 기뻤던 그 순간.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육아 문제는 현실이 되었다. 목을 못 가누는 아이의 목욕 시키는 것,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누구편인지 모르는 언론은 요즘 “황혼 육아 독박”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맞벌이 부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이렇듯 삶은 심술이 사납다. 기쁨을 주는 것 같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기쁨 뒤에 쌓여 있는 걱정 때문에 사람들은 삶에 치인다. 입사의 기쁨이 지나면 지독한 야근과 꼰대의 간섭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의 설레임이 가시기도 전에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통하지 않는 말 때문에 생고생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한 이불에서 알콩달콩 살수 있다는 희망이 끝나기도 전에 시월드와 처월들가 얄궂은 웃음을 지으며 어서 와라 손짓한다. 축복받은 은퇴를 하고 삶이 여유가 있을지라도 며칠만 지나면 출근시간에 쫓기던 시절과 상사의 뒷담화를 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렇듯 삶을 되돌아보면 기쁨과 걱정의 속성이 보인다. 기쁨은 강렬하지만 휘발성이 강하고 걱정은 은근하지만 오래 지속된다. 동전을 관찰하면 기쁨과 걱정의 속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동전 앞면에는 그림이 있다. 그림은 상상할 수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동전의 뒷면에는 숫자가 있다. 숫자는 비교할 수 있고 현실의 세계에 머문다. 기쁨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걱정은 동전의 뒷면이다. 처음 동전을 만든 사람은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 탄생이 동전의 앞면이 보여주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육아는 동전의 뒷면의 숫자와도 같이 현실적이고 풀기 어려운 숙제다. 아이를 돌봐주는 시부모나 처가부모님이 있든지, 전업 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든지, 어린이 집에 보내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아이가 크면 괜찮아 지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아이가 학년을 올라갈수록 걱정은 더욱 깊어진다. 가끔씩 아이가 재롱과 깜짝 재능으로 기쁨을 주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현실은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아내와 대화를 하다보면 아이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아이 미래에 욕심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걱정하기보다 나의 허세 때문은 아닌지. 내 삶도 어찌하지 못했는데 아이 삶을 재단하려하는 것이 내 욕심이 아닌지. 어쩌면 우리 삶은 욕심과 허세가 만들어 놓은 무릎 높이의 함정에 얼굴만 묻고는 답답하고 힘들다며 허우적거리는지도 모른다. 고개만 살짝 들고 다르게 세상을 보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도 있다. 삶은 욕심의 깊이만큼 힘들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없으면 삶은 지겹고 재미없다. 욕심과 無慾(무욕)의 적정한 경계를 정하는 일은 동전을 세로로 세우는 것만큼 어렵다. 그래서 행복하기도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을 극복하려하기보다 흐르는 물처럼 그냥 받아들이면 어떨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처가살이의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