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야구에 열광할까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최근 몇 년간 계속 700~800만 명 수준에 머물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그만큼 올해 대한민국은 야구로 들썩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구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요. 물론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스포츠 리그가 야구인 것(프로축구와 1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리고 그 당시 3S 정책에 힘입어 프로야구의 대중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던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람들이 왜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열광하는가입니다. 우리는 왜 지금 야구에 열광하고 있을까요?
야구는 곧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야구는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6개월여 동안, 일주일 중 월요일만 빼고 모든 요일에 경기가 치러집니다. 팀당 무려 144경기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빈도도 잦고, 우리는 자주 노출되는 콘텐츠에 필연적으로 더 익숙해집니다. 당장 저만 해도 퇴근한 뒤 저녁밥을 혼자 먹을 때는 습관적으로 야구 경기를 켤 때가 많으니까요. '야구에는 스토리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긴 역사와 함께 팬들과 가장 자주 만나는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과 팀 하나하나에 대한 에피소드가 모여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는 또다시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요기 베라가 이 말을 뱉으면서 야구를 관통하는 명언이 될 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이 문장은 야구의 본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점수를 많이 낸 팀이라도 결국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면 경기를 끝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큰 점수차이로 치고 있더라도 언제든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양 팀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경기의 향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희생해 더 큰 점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작전이 매 순간순간마다 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 하나의 경기도 끝까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해결사 선수 하나가 경기를 뒤집는 기적적인 경기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에이, 그렇게 기적이 쉽게 일어나는 거냐구요? 당장 올해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는 1점 차이로 지고있던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 끝내기 역전 홈런을 때려낸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 경기마다 이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야구에 처음 입문하면 가장 당황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경기시간입니다. 평균 경기시간이 무려 3시간입니다. 앞서 말한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라는 특성과 맞물리면 경기 하나에만 5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는 숏폼 스포츠입니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들과 다르게 한 타석 한 타석이 비교적 완결된 승부입니다. 마치 축구로 비유하자면 승부차기를 계속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완결된 승부'는 9개의 이닝 하나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말하면 야구는 숏폼 콘텐츠 수십 개를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진입장벽이 높은 데 비해 막상 입문하고 난 뒤부터는 한도끝도 없이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올해 티빙이 KBO 중계권을 가져가고 경기 영상을 숏폼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이 허용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영상들이 바이럴되었죠? 아마 이렇게 많은 숏폼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또한 방금 말한 야구의 특징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NBA가 빠른 경기 템포를 활용한 숏폼 바이럴 영상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야구도 마찬가지로 숏폼 콘텐츠에 완전히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마침 도파민에 절여진 우리들이 야구에 빠지면, 이건 거부하기가 참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매력을 느끼려면 일단 야구를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야구의 진입장벽은 높습니다. 당장 야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다면 경기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응원하는 팀 하나를 정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내가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죠. 남들은 다 재미있다는데 내 눈에는 공 던지고 공 치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고, 똑같이 공을 잡았는데도 어떨 때는 아웃이라고 하더니 또 어떨 때는 안타라고 하고... 원래 야구를 보던 사람들은 당연한 규칙이라는데 처음 야구를 보는 입장에서는 원망스럽게도 당연한 것 하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구 입문 설명서를 씁니다. 야구에 대한 기록이든 에피소드든 야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물론 저도 아직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어려운 말이나 재미 없는 지표들은 생략하고 최대한 경기의 흐름에 맞춰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20편의 글은 1회초부터 9회말까지 이닝을 천천히 따라간다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만약 글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너무 어렵게 설명되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저의 역량이 부족한 탓입니다.
자, 여러분은 방금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야구를 한번 입문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곧 야구장에 처음 발을 내디딥니다. 이제 눈앞에는 곧 탁 트인 하늘과 그라운드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야구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