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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일스팟 Nov 06. 2024

야구, 좋아하세요?

내 나이 서른하나, 그 중에 6할은 야구 덕질

2024년 10월 28일, KIA 타이거즈가 통산 12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우승을 빼도 벌써 3번째 우승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과 2017년처럼 이번에도 타이거즈의 우승이 결정되던 순간 저는 TV 앞에서 야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창 대한민국에 축구 열풍이 불 때도,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고 국제전 성적이 나빠지면서 대한민국 야구는 이제 끝이라고 사람들이 실망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언제나 야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캐스터의 멘트까지 외울 정도로 많이 본 끝내기 홈런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야구를 보았던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살던 집이 무등경기장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매일 저녁마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와 폭죽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야구부가 있던 초등학교에 다녔던 덕에 항상 야구복을 입고 등교하던 친구들을 보아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저의 일상에 이미 당연한 존재였습니다.


맨 처음 야구장에 갔던 기억은 아직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어린이날이었을 거예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때 저는 두려움도 없이 여동생과 단 둘이서 야구장에 갔습니다. 한화와의 경기였고, 우리는 거의 외야석 가까운 자리에 앉았습니다. 경기 중반쯤 중간계투로 한화에서 구대성이 등판했고 KIA에서는 전병두가 등판했습니다. 동생은 그 선수들을 보며 저에게 잘 하는 선수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몰랐지만 TV에서 꽤 자주 들어본 이름들이라서 그냥 잘 하는 선수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응원석 쪽에서는 하얀 면장갑을 낀 할머니 한 분이 수비 이닝 때마다 삼진을 외쳐댔고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보며 웃었습니다(아마 거의 매일같이 야구장에 오시는 분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날 경기는 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날의 분위기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아마 저에게 그 날 경기는 꽤 즐거운 기억이었던 모양입니다.




중학생이 되고 자의식이 생기면서 제 성격이 소위 말해 '인싸'의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체 키가 작고 소심해서 친구들과 무리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노는 축도 아니었고, 운동신경도 딱히 없어서 남자애들이 으레 모여서 하던 공놀이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건 가끔 삼삼오오 피시방에 들르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사실 게임에도 재능이 별로 없던 터라 그 당시에 유행하던 게임들에는 영 흥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MP3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더 길었죠. 애초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격렬하고 경쟁심이 넘치는 그 어느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야구는 이런 저에게 최적화된 스포츠였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의 호흡도, 그리고 시즌 전체의 호흡도 길었으니까요. 2시간이 넘는 경기를 굳이 다 보지 않아도 점수판만 보면 그 날 경기의 흐름이 대강 보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라이브로 경기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매일 저의 아침은 집앞에 배달온 신문을 가장 먼저 가져와서 스포츠 면을 펼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야구와 관련된 기사가 있으면 한 번 읽어 보고, 어제 우리 팀 경기의 점수표를 보고, 마지막으로 순위표와 게임차를 보았습니다. 그 정도면 족했습니다. 마음 졸이며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건 국제전이나 포스트시즌 정도면 충분했습니다(더욱이 그 당시 KIA는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았던 시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야구는 스포츠라기보다 숫자로 읽는 일종의 일일 드라마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 덕질이 벌써 20년 남짓입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점수판이 꼭 암호처럼 보인다더라 (출처 : 나무위키)




문득 이제는 야구가 없는 한 해를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야구가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다는 걸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좋아해 왔던 거의 유일한 것이 야구입니다. 워낙 끈기가 없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내가 어떤 한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야구의 매력이 대체 뭐길래 계속해서 그렇게 덕질을 하고 있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의 매력이 뭐냐구요? 어..아무래도 앞으로 이야기가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ㅖ...그..좋아하긴 하는데요.. (출처 : 컴투스프로야구 v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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