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치면 벌어지는 일
물론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루하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 좋은 타자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배트로 쳐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다 보면 좀 이상합니다. 어떤 공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데도 타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어떤 공은 별로 세게 친 것 같지도 않은데 타자가 1루까지 전력질주를 합니다. 공이 배트에 맞고 날아가는 순간부터 모든 수비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공을 주고받습니다. 타자가 공을 친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보통 야구를 처음 입문하면 아웃과 안타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안타가 되는 상황과 아웃이 되는 상황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가 공을 쳐낸 이후의 상황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아 페어 지역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면 이 때부터는 2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깁니다. 공이 땅에 처음 떨어지기 전에 글러브로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조금 더 간단한 상황을 먼저 보겠습니다. 배트에 맞은 공이 저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수비수가 공을 뒤쫓아갑니다. 미리 자리잡고 있던 선수가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냅니다. 이 경우 타자는 그대로 아웃됩니다.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웃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땅에 닿기 전 잡으면 무조건 아웃입니다. 파울 지역에서 잡든 페어 지역에서 잡든 상관없습니다. 배트에 제대로 맞아서 직선으로 쭉 날아가는 공을 중간에 끊어내듯 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트로 쳐낸 공이 땅에 닿기 전 잡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플라이', 또는 '뜬공' 아웃이라고 부릅니다.
이번에는 공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파울 지역이 아닌 페어 지역에 공이 떨어지면 그 때부터 야구는 일종의 술래잡기가 됩니다. 타자 선수는 1루 베이스를 향해 달립니다. 반대로 수비 선수는 최대한 빠르게 공을 잡아서 타자 선수가 달리고 있는 베이스로 공을 던져야 합니다. 공보다 빠르게 베이스에 도착하면 세이프, 공이 더 빠르게 도착하면 아웃입니다. 세이프가 되면 그것을 '안타'라고 부르고, 그 때부터 타자는 해당 베이스의 '주자'가 됩니다. 만약 1루에 도착했는데도 공이 저 멀리에 있다면요? 그러면 2루, 3루, 더 나아가 모든 베이스를 돌아 홈까지도 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타 한 번에 2루까지 달려서 세이프가 되면 2루타, 3루까지 달려서 세이프가 되면 3루타가 되는 것입니다. 홈까지 들어오면? 그건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보통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부르는 건데, 당연히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물론 이렇게 1루를 지나서 뛸 때는 공보다 내가 더 빠르게 다음 베이스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겠죠. 안타를 잘 쳐 놓고도 무리하게 뛰다가 허무하게 아웃카운트를 날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깁니다. 아까 1루에 선수보다 공이 먼저 도착하면 타자는 아웃된다고 이야기했죠. 그럼 어떤 베이스에서도 공이 선수보다 일찍 도착하기만 하면 무조건 아웃인 걸까요? 또 그건 아닙니다.
야구 베이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가운데 아래가 홈 베이스고, 홈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1루, 2루, 3루입니다. 주자는 베이스에 몸이 닿아 있을 때만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해, 베이스에서 몸이 떨어지면 언제든 아웃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경기장을 거대한 윷놀이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대신 베이스 하나에는 한 명의 주자만 있을 수 있습니다. 자, 타자가 공을 치면 타자 주자는 1루 방향으로 달립니다. 이 선수가 안타를 치고 1루 주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다음 타자가 공을 치면 타자 주자는 역시 1루 쪽으로 달립니다. 원래 1루에 있던 주자는 당연히 다음 베이스인 2루 쪽으로 달리겠죠. 어라, 진짜 윷놀이처럼 주자가 움직이지 않고 1루 주자를 업고 갈 수는 없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뒤에 있는 베이스가 다른 주자들로 꽉 차 있다면 나는 반드시 다음 베이스로 달려야 합니다. 이렇게 타자 주자로 인해 내 뒤에 있는 주자가 나를 밀어내는 상황, 다시 말해 내가 '반드시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공이 내가 가려고 하는 베이스를 밟고 있는 수비 선수에게 먼저 도착한다면 그 순간 나는 아웃이 됩니다. 이걸 '포스아웃'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2루타를 치고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타자가 안타를 쳤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3루로 달려도 되지만, 내 뒤에 있는 1루가 아직 비어 있으니 2루에 머물러 있어도 됩니다. 이렇게 내가 반드시 달릴 필요는 없는 상황에는 공을 앞 베이스로 던진다고 무조건 아웃시킬 수는 없습니다. 3루로 뛰다가 중간에 아웃이 될 것 같을 때 다시 2루로 돌아올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주자를 아웃시켜야 할까요? 그럴 때는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을 때 공을 직접 주자에게 터치해야 합니다. 만약 수비 선수가 베이스를 이미 밟고 있더라도 반드시 주자가 베이스에 몸이 닿기 전에 공을 주자에게 터치해야 아웃됩니다. 이걸 '태그 아웃'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공이 경기장 안에 떨어졌을 때는 알겠는데, 타자가 아주아주 멀리까지 공을 쳐내서 수비 선수가 공을 잡을 수 없는 관중석까지 날아가 버리면 어떡하죠? 이런 상황이 바로 홈런입니다. 타자가 홈런을 치면 모든 주자가 4개의 베이스를 진루합니다. 다시 말해, 타자를 포함해서 모든 주자가 홈으로 자동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라는 거죠. 자연스럽게 베이스에 몇 명의 주자가 있는지에 따라 홈런의 점수도 달라집니다. 베이스에 주자가 아무도 없다면 타자만 혼자 베이스를 한 바퀴 돌아올 테니 1점 홈런(솔로 홈런), 주자가 1명 있으면 투런, 2명 있으면 스리런, 그리고 모든 베이스에 주자가 차 있으면 4점짜리 만루 홈런입니다. 홈런은 지금 베이스에 있는 모든 주자가 전부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기를 한 번에 뒤집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사람들이 홈런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혹시나 공이 경기장 바닥에 먼저 닿은 후 튕겨서 관중석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그건 2루타로 취급해서 모든 주자가 2개 베이스를 진루합니다.)
글로만 다양한 상황들을 이해하려니 너무 복잡해 보이죠. 사실 직접 경기를 보면서 차근차근 알아나가는 것이 더 재미있지만, 야구의 모든 상황을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은 경기를 직접 보고 있더라도 역시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야구장에서는 방금 이야기한 상황들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변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마다 우리는 또 새로운 규칙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우려고 야구를 보는 거지 규칙을 외우고 공부하기 위해 야구를 보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씩 다양한 상황을 접하면서 왜 이 상황에는 이런 규정이 만들어졌을까를 이해하는 것도 야구를 보는 하나의 묘미입니다. 생각보다 야구 규칙은 굉장히 합리적이거든요. 특히나 포스아웃과 태그아웃은 앞으로 언급할 다양한 수비 작전들의 뼈대가 되는 만큼, 경기를 보면서 수비 선수들이 왜 이런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선수들의 움직임이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물론 모든 운동이 다 그렇겠지만, 야구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스포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