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알파, 스트라이크와 볼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의 공을 타자가 상대하면서 진행됩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투수가 마운드 위에 올라가고, 홈 쪽에는 포수가 앉아있습니다. 포수 뒤에는 심판이 서 있고 포수 앞에는 상대팀 타자가 '배트'라고 부르는 방망이를 들고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 투수가 해야 할 일은 타자가 최대한 치기 어렵도록 공을 던지는 것이고, 타자가 해야 할 일은 그 공을 최선을 다해 쳐내는 것입니다. 타자가 치기 어려운 공은 어떤 걸까요? 타자가 반응하기도 어려울 만큼 아주 빠르게 공을 던지면 아마 굉장히 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네요. 아예 타자가 칠 수 없도록 배트 끝에도 닿지 않을 만한 곳에 공을 던지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요? 야구에서 스트라이크와 볼의 개념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초창기 야구에는 스트라이크와 볼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투수는 타자가 공을 칠 때까지 계속해서 공을 던져줘야 했고,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타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급하게 공을 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경기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지고, 플레이 자체도 지루해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수는 타자가 칠 수 없는 곳으로 공을 던졌을 때 페널티를 주고, 반대로 타자는 칠 수 있는 곳으로 날아온 공을 정상적으로 치지 않았을 때 페널티를 주는 규정이 새로 도입됩니다. 타자의 페널티가 3번 쌓이면 타자는 아웃되고(삼진), 투수의 페널티가 4번 쌓이면 타자는 1루로 자동 출루(볼넷)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 규정이 바로 스트라이크와 볼입니다.
역사 이야기는 역시 별로 재미가 없죠. 지금 야구를 보는 관중의 입장인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래서 뭐가 스트라이크고 뭐가 볼인지입니다. 사실 볼은 쉽습니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나간 공에 타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그건 다 볼입니다. 이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게 아까 말한 '타자가 칠 수 있는 곳'을 정의한 영역이구요. KBO에서 발간한 2024 공식야구규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존은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베이스 상공'입니다. 좀 복잡하지만, 그림으로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네, 그림을 같이 봐도 역시 어려워요.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중계 화면과 심판 콜이 있으니까요. 보통은 우리를 위해 중계 화면의 타자 옆에 직사각형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표시해 줍니다. 우리는 그 존을 보고 방금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대략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스트라이크라면 주심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키는 제스처를 하고, 동시에 점수판 쪽에 노란색 불이 들어오거나 아웃카운트 위의 (숫자)-(숫자) 중 두번째 숫자가 카운트됩니다. 반대로 볼인 경우에는 초록색 불이 들어오거나 아웃카운트 위의 첫번째 숫자가 카운트됩니다.
그럼 앞서 말한 볼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황이 스트라이크겠죠. 이 '대부분의 상황'은 보통 3가지가 있습니다.
1. 스트라이크존 안에 공이 들어왔고, 타자가 공을 건드리지 못했을 때
2.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공이 빠졌지만 헛스윙을 했을 때
3. 타자가 공을 쳤지만 파울이 되었을 때
나머지 두개는 알겠는데, 야구를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이 파울이라는 녀석이 또 하나의 진입장벽입니다. KBO 기준으로 파울을 구분하는 세부 상황만 무려 12개입니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이런 세세한 상황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채꼴 모양의 경기장 가장자리에 있는 파울라인만 생각하도록 하자구요. 일단 배트에 공이 맞기는 했지만 파울라인 바깥쪽에 떨어지는 공은 거의 전부 파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선 바깥에 떨어졌으면 관중석까지 날아가서 떨어지든 포수 바로 옆으로 굴러가든 상관없이 파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타자가 친 공이 파울라인 안쪽의 경기장에 떨어졌을 때에만 아웃이든 안타든 다음 플레이가 진행(인플레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파울은 2스트라이크까지는 일반적인 스트라이크처럼 카운트가 올라가지만 그 다음부터는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2스트라이크 이후부터는 파울만 연속으로 50개를 쳐도 아웃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타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삼진당하지 않으려면 2스트라이크 이후부터는 확실한 공만 쳐내고,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는 애매한 공은 전부 파울로 만들어야겠군. 그래서 이렇게 기술적으로 파울을 잘 만드는 선수들을 보고 우리는 '커트를 잘 해낸다'라고 부르기도 하고, KBO에서 '커트'를 잘 하는 대표적인 선수인 이용규 선수의 이름을 따서 '용규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용규놀이를 당하는 투수와 팬들 입장에서는..어떤 코스로 공을 던져도 다 커트해내는 타자를 볼 때마다 굉장히 골치가 아픕니다.
결국 스트라이크와 볼은 투수가 어떻게든 타자를 아웃시키고 타자는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심리전으로 이어집니다. 투수는 스트라이크존 안에 공을 우겨넣을 수도 있지만,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는 볼을 던져서 타자의 방망이를 유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옆으로 살짝 빠지는 공을 일부러 던지기도 하고, 빠른 공만 던지다가 갑자기 느린 공으로 타이밍을 빼앗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대체 왜 저런 터무니없는 곳에 공을 던지지 하는 순간에도 전략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매 타석마다 중계진들이 타자와 투수 간의 심리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