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수비 포지션의 의미
경기는 2회 말, 우리 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자리잡습니다. 베이스는 3개인데 내야에만 선수가 4명, 그것도 2루 베이스를 일부러 비워둔 것처럼 2루를 사이에 두고 2명의 선수가 양쪽에서 서 있습니다. 외야에는 선수가 겨우 3명뿐입니다. 생각해보니 상대팀이 수비를 할 때도 비슷한 위치에 선수들이 서 있었습니다. 수비를 할 때 선수들이 서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야구도 축구처럼 선수들의 포메이션이 정해져 있는 걸까요?
야구에는 총 9명의 선수가 플레이를 합니다.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순서대로 1번부터 9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포지션별 그림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여기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투수와 포수를 묶어서 '배터리'라고 부르고, 노란색으로 표시한 1루수, 2루수, 3루수, 그리고 유격수를 내야수라고 부릅니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3명의 선수는 외야수라고 부르구요. 말 그대로 내야수는 흙으로 덮혀 있는 필드 안쪽인 내야를 수비하는 선수고, 외야수는 필드 바깥쪽을 수비하는 선수입니다. 각각의 선수는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아서 베이스로 던지는 수비를 합니다.
나머지 선수들 이름은 나름 직관적입니다. 1루수에서부터 3루수까지는 해당 베이스를 수비하는 선수인 거고, 외야수들도 왼쪽에 있으면 좌익수, 오른쪽에 있으면 우익수, 가운데 있으면 중견수니까요. 그런데 유격수만 이름이 낯섭니다. 영어로는 Short-stop. 영어로 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사실 이 유격수라는 포지션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정설이라고 여겨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창기 야구에서는 공의 반발력이 약해서 외야에서 내야까지 한 번에 공을 던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외야와 내야 중간에서 공을 받아 중계를 해 주는 선수가 필요했는데, 이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입니다. 현대 야구로 발전해오면서 공이 딱딱해지고 반발력도 커지면서 이렇게 중계 플레이를 전문으로 해 주는 선수가 굳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유격수는 수비 부담이 큰 내야 쪽에서 수비를 하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실제 경기를 보다 보면 선수들이 언제나 정확하게 저 위치에 서 있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1루와 2루 사이에만 3명의 선수가 서 있을 때도 있고, 반대도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주자 상황과 타석에 있는 타자가 치는 공이 어느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은지 등을 계산해서 수비 위치를 조정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포수를 제외한 모든 수비 선수들은 페어 지역 안에서 자유롭게 움질일 수 있거든요. '수비 시프트'라고 부르는데, 중요한 현대 야구의 수비 전략 중 하나지만 최근에는 이 수비 시프트가 경기 흐름을 너무 길어지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어서 내야수가 투구 시 외야 잔디를 밟을 수 없게 하는 등 수비 시프트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 선수들의 수비 포지션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수비 포지션별로도 꼭 갖춰야 할 능력이 있고, 난이도도 각자 다릅니다. 예를 들어 유격수는 내야에서 가장 넓은 수비범위를 커버해야 하고 내야 수비를 조율해야 하는 만큼, 가장 수비적인 부담이 큰 포지션입니다. 반면에 코너 외야는 공이 날아오는 빈도나 난이도도 비교적 낮은 편이죠. 이렇게 포지션별로 수비 난이도에 따라 타자들을 최적의 포지션에 배치하는 것 또한 팀의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1루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뭐니뭐니해도 포구 능력입니다. 모든 타자의 목표는 1루에 출루하는 것이고, 반대로 수비 선수들은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1루로 공을 던지니까요. 아마 포수 다음으로 포구를 많이 하는 포지션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가끔씩 강습 타구가 날아올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1루수는 아무리 잡기 어렵게 송구가 오더라도 1루 베이스에 발을 붙인 채로 공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수비 자체에 대한 부담은 내야수들 중 적은 편이라서, 보통 공격이 강한 타자들이 1루수를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2루수와 유격수는 내야의 중심을 사이에 두고 있는 포지션입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도 많고, 잡기 어려운 타구도 자주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병살 상황과 같이 수비적으로 호흡을 맞출 상황이 많은 만큼 2루수와 유격수는 서로 유기적인 수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포지션을 묶어 '키스톤 콤비'라고도 부릅니다. 특히 유격수는 내야 수비를 조율하는 사령관과 같은 역할도 함께 수행하는데요, 수비 부담이 가장 큰 만큼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루수는 오른손잡이 타자가 당겨치는 강한 타구들이 3루 쪽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순간적인 반응속도가 중요합니다. 또 1루까지 송구하는 거리가 가장 긴 만큼 강한 어깨도 중요하죠. 하지만 2루수와 유격수에 비해서는 비교적 수비 부담이 적기 때문에 공격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포지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중견수는 외야의 가운데를 수비하는 선수입니다. 애매한 외야 플라이를 포함해 대부분의 경기장 중앙 방향으로 오는 뜬공은 중견수가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이 어디에 떨어질지를 포착하는 센스와 빠른 발이 필요합니다. 특히 외야까지 날아가는 타구를 놓치면 그대로 장타로 연결되기 때문에 경기 후반에는 수비력 보강을 위해 대수비 전문 선수가 교체되어 나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어요. 포수를 포함해서 앞서 살펴본 2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중견수까지 경기장 중앙 부분을 수비하는 선수들을 묶어서 '센터라인'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만큼 수비가 중요하다는 의미죠.
우익수와 좌익수는 가장 수비 부담이 적은 포지션입니다. 내야수보다는 외야수가, 센터라인보다는 코너 수비수가 수비 부담이 적은 편이에요. 특히 우익수는 주자의 추가 진루를 막기 위해 2루나 3루로 송구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강한 어깨가 중요하지만, 좌익수는 3루와의 거리도 짧아서 수비적인 부담이 가장 적은 포지션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코너 외야수들은 공격력이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수비 부담을 최대한 덜어 주기 위해서 코너 외야수로 기용하거나, 수비력이 떨어지는데도 공격력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선수들이 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거포 외야수'라고 부르는 선수들은 대부분 코너 외야수들입니다.
수비 포지션마다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를 이해하면 플레이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선수가 왜 저 곳에 서 있는지, 저 상황에서 왜 공을 저기로 던지는 건지 하나하나 상황이 눈에 들어오면 야구가 점점 재미있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