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종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 9회말, 1점차로 앞선 1사 만루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지친 류현진 선수를 내리고 투수를 교체합니다.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나온 투수는 정대현. 정대현 선수를 보고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은 이렇게 대화를 나눕니다.
캐스터 : 자! 정대현, 완벽한 이 마무리를...또 기대를 합니다!
해설 : 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순데...
캐스터 : 네!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 자, 투나씽!
(타자 타격)
캐스터(해설) : 유격수! (아악!) 잡았어요! (뜨블플레이! 뜨블플레이!) 어! 1루로!(고앵민! 고앵민!) 아아악!
해설: 아아아! 우승이에요! 증대현! 하으아악!
캐스터(해설) : 대한민국! (예!) 우승입니다! (예! 우승이에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대한민국!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정대현 선수의 별명은 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국내 최고의 싱커볼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말한 '직각으로 떨어지는 싱커볼'이 무슨 공인지 아시나요?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구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듣다 보면 너무 구질이 많아서 대체 저 공이 어떤 공이라고 하는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자주 있죠. 오늘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구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금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투수들은 왜 여러 가지의 구종을 던지는 걸까요? 당연하지만 투수의 목표는 타자가 내 공을 제대로 쳐내지 못하도록(아예 치지 못하거나, 빗맞거나) 해서 아웃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자가 예상하고 있는 공과는 다른 공을 던져야만 하는 거죠. 여기에서 투수의 선택지는 크게 2가지로 좁혀집니다. 타자가 치지 못하는 속도의 공을 던지거나, 타자가 칠 수 없는 방향으로 공을 던지거나.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구종들도 크게는 이 두 가지의 기준에 따라 분류가 됩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구종을 크게 직구와 변화구로 분류하곤 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좀 모호한 기준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포심 패스트볼을 직구, 나머지는 변화구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가장 빠르게 직선으로 던지는 공은 직구, 날아가는 와중에 직구와 궤적이 어떻게든 달라지는 나머지 구종은 변화구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슬라이더니, 체인지업이니, 커브니 하는 공들이 다 변화구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류를 하면 변화구에 대해 설명하는 게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앞서 이야기한 '속도가 변화하냐, 움직임이 변화하냐'를 기준으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미국에서의 구종 분류법과 더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첫번째는 패스트볼입니다. 말 그대로 최대한 빠르게 던지는 공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직구가 이 패스트볼의 일종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종이기 때문에 보통 제구도 가장 잘 되고(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속도 가장 빠릅니다. 같은 패스트볼이라도 실밥을 어떻게 잡는지와 팔이나 손가락으로 얼마나 스핀을 주는지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른데요, 일반적으로 가장 자주 보는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실밥 4군데에 손가락이 닿아서 4-seam)과 투심 패스트볼(같은 맥락으로 2-seam), 싱커, 커터 정도가 있습니다. 사실 실밥을 어떻게 잡는지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 투심과 싱커는 포심에 비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약간 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특히 회전량이 굉장히 많은 포심 패스트볼은 일반적인 공보다 훨씬 덜 떨어져서 타자 입장에서 마치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보통 '돌직구'라든지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이렇게 회전수가 높아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말합니다.
커터는 다음에 이야기할 슬라이더와 포심의 중간 정도의 구질인데,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바깥쪽으로 살짝 꺾입니다. 역대 최고의 마무리이자 최고의 커터볼러 중 하나로 꼽히는 마리아노 리베라의 공은 좌타자(오른손잡이 기준 바깥쪽이니까 반대 타석에 서는 좌타자에게는 몸쪽으로 꺾여들어오겠죠?)들의 배트를 너무 자주 부러뜨려서 '배트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체인지업입니다. 보통 오프스피드 볼의 일종이라고 부르는데, 오프스피드라는 말은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 공의 가장 중요한 점은 패스트볼과 똑같은 자세로 공을 던지는데 패스트볼보다 느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체인지업의 구속이 빠르다는 건 전혀 장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도록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가 많이 날수록 효과가 큰 경우가 많죠. 체인지업 안에서도 서클 체인지업이니 팜볼이니 하는 구분이 다양하지만, 거의 같은 공인데도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체인지업의 기본적인 원리는 같습니다.
구속을 활용하는 구종 다음은 움직임을 활용하는 구종입니다. 공의 움직임은 크게 위에서 아래로의 움직임과 좌우로의 움직임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공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구종을 '브레이킹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구종으로는 포크볼, 스플리터, 커브볼이 있습니다(스플리터나 포크볼은 오프스피드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역시 딱히 신경쓸 필요는 없습니다).
포크볼이나 스플리터는 공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서 던집니다. 자연스럽게 공에는 회전이 덜 들어가고, 포심 패스트볼에 비해 공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싱커와 포크볼, 스플리터가 대체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사실 보는 입장에서 비슷합니다. 공을 잡는 그립도 다르고 낙폭도 다르긴 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목적은 패스트볼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속과 낙차에 차이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반면 커브볼은 포크볼이나 스플리터와는 좀 다른데, 보통 공을 채서 역회전을 만드는 다른 구종과는 다르게 반대 방향으로 회전을 줘서 던집니다. 탑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낙폭이 굉장히 큽니다. 잘 던진 커브볼은 마치 손에서 위로 튀어오르듯이 날아가다가 뚝 떨어져서 타자들이 정확한 포인트를 잡기가 어렵죠.
마지막은 좌우 방향으로 움직이는 공입니다. 대표적으로 슬라이더가 있습니다. 공을 던질 때 옆으로 스핀을 줘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듯이 날아갑니다. 오타니가 주무기로 던지면서 크게 화제가 된 스위퍼도 슬라이더의 일종이고, 예전 박찬호의 주무기였던 슬러브도 슬라이더의 일종입니다. 스위퍼는 극단적으로 좌우 움직임을 극대화한 공이고, 슬러브는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 정도인 공이죠. '스트라이크인 척 하는 볼'인 만큼, 제대로 구사가 된다면 삼진을 잡기 굉장히 좋은 구종입니다.
길고도 길었습니다. 간단하게 적으려고 했는데도 야구라는 게 생각보다 참 복잡합니다. 앞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너클볼처럼 진짜 기상천외한 공도 있습니다. 축구로 치면 무회전 슛처럼 거의 회전이 생기지 않도록 밀듯이 던지는 공인데, 공기저항의 영향을 극단적으로 많이 받다 보니 던지는 투수도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즐겁게 야구를 보는 게 목적인 사람들은 패스트볼, 약간 아래로 떨어지는 패스트볼, 체인지업, 아래로 떨어지는 공, 옆으로 휘는 공 정도만 알아도 됩니다.
물론 야구에 대해서 더 깊게 알면 알수록 투수가 던지는 공의 세계는 더 심오해집니다. 공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데이터가 접목되면 더 재미있습니다. 수직 무브먼트니 수평 무브먼트니 하는 움직임의 정도라든지, 구속 대비 회전수니 하는 영역들이 그것입니다. 지금껏 계속 야구의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피했는데, 앞으로는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 나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