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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 저 강민호인데요?

도루, 번트 같은 야구의 공격 작전들은 가치가 있을까

by 마일스

야구의 공격 이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작전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타자라고 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아웃되기 마련이고, 한 이닝에서 아무리 주자가 루상에 많이 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홈까지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점수는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드시 점수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거나 토너먼트 경기와 같이 1~2점으로도 승부가 크게 갈리는 상황에서는 많은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도루나 희생타, 히트 앤드 런이나 더블 스틸과 같은 작전을 적극적으로 주문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전이 실제 데이터로도 득점 확률을 더 올려 주는 게 확실할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고 아마 여러분도 정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겠죠. 그럼 이제부터 '작전 야구'의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다양한 야구의 공격 작전들

야구에서 공격 작전은 점수를 짜내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나옵니다. 한 점으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클 때, 혹은 지금 타석에 있는 선수를 믿고 맡기기에는 너무 득점 확률이 낮을 때(...)와 같이 말이죠. 보통은 주자의 능력을 통해 진루를 하게 만들거나 타자의 희생을 통해 상태 수비로 하여금 선행주자의 진루를 허용하도록 강요하는 작전들이 많습니다.


도루와 히트 앤드 런

도루는 말 그대로 베이스(루)를 훔치는 작전입니다. 루상에 있는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자 쪽의 베이스로 공을 던져서 선수를 태그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운드에서 투수는 타자를 상대하고 있기 때문에, 투수가 주자 견제를 위해 직접 베이스로 공을 던지거나 타자가 공을 쳐서 인플레이 상황이 되지 않는 한 주자의 발은 자유롭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주자는 투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기 위해 준비할 때 일반적으로 베이스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아니라 다음 베이스 쪽으로 몇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타자가 공을 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음 베이스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앞 베이스가 주자가 없다면 주자는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데, 투수가 홈플레이트로 공을 던지는 짧은 시간을 틈타 비어 있는 다음 베이스까지 달려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도루입니다.

도루 능력이 아주 좋은 주자는 이렇게 투수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도루 작전이 다양하게 발전한 형태 중 하나가 바로 히트 앤드 런입니다. 주자는 마치 도루를 하듯이 투수가 공을 던지자마자 무조건 달리고, 타자는 땅볼이 나오더라도 어떻게든 공을 맞춰서 적극적으로 진루를 노리는 작전이죠. 또는 주자가 2명 있을 때 2명의 주자가 동시에 뛰는 더블 스틸이라는 작전도 있습니다. 더블 스틸 작전은 주자가 1, 3루일 때 1루 주자가 도루를 한 뒤 포수가 2루로 공을 던지는 사이에 3루 주자가 홈스팀을 노리는 식의 플레이로도 자주 나옵니다.

말로는 좀 복잡하지만, 영상으로 보면 이런 식입니다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

도루가 주자의 능력에 의존하는 작전이라면, 이번에는 희생 작전입니다. 먼저 번트는 방망이를 아주 짧게 잡고 공에 가져다 대서 일부러 공이 내야에 짧게 떨어지도록 하는 작전입니다. 투수와 포수 사이에 공이 떨어지는 만큼 높은 확률로 타자 주자는 아웃당하지만, 타자가 번트를 대자마자 출발하는 주자는 타자가 아웃당하는 사이 여유 있게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수 있습니다.

주자가 안전하게 진루하도록 적당히 느리고 짧은 타구를 만드는 것도 기술입니다


희생 플라이는 어떻게 보면 번트와 반대인 작전인데요. 뜬공이 잡혔을 때 주자가 현재 베이스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반대로 이용한 작전입니다. 외야 깊숙한 곳에 뜬공을 날려 보냈을 때 수비수가 뜬공을 잡을 때까지 주자는 베이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비수가 공을 잡자마자 출발해서 다음 베이스로 이동하는 거죠. 이렇게 수비수가 공을 잡자마자 스타트를 하는 행동을 '태그업'이라고 부릅니다.


야구의 작전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야구의 작전은 팽팽한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정작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야구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작전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너무 뛰어난 선수들만 모여서 굳이 희생 작전을 할 필요가 없어서일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작전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적절한 상황에서 잘 구사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득점 확률이 올라갈 것만 같은 작전들이지만, 사실 데이터를 들여다봤더니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번트는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손해입니다

놀랍게도 번트는 성공했을 때에도 손해였습니다. 야구에서 특정 행동이 이득이냐 손해냐를 계산할 때에는 특정 행동을 하기 전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과 행동 이후의 기대 득점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요. 메이저리그의 2010년~2015년 데이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번트를 대는 무사 1루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은 0.86이었고 번트를 성공한 후인 1사 2루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은 0.66으로 0.2점이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에 따라 메이저리그 팀들은 번트를 점점 더 줄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1998년에는 메이저리그 전체 희생번트가 1,705개였지만, 2019년에는 776개에 불과했습니다. 그 776개 중에서도 55.6%는 투수가 타석에 섰을 때 나왔구요(메이저리그의 내셔널리그에서는 2020년 전까지 지명타자 대신 투수가 타석에 섰습니다).

사실상 1루에서 2루로 진루하는 것보다 아웃카운트 하나의 가치가 더 크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저 기대 득점은 여러 데이터가 합쳐진 평균치이기 때문에 언제나 번트가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1점의 가치가 높아지는 경기 후반이나 연장전, 또는 수비 시프트에 약한 타자가 타석에 있는 경우 등에는 번트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집니다. 특히 2019년 메이저리그에서는 시프트를 가장 자주 당한 좌타자 10명의 기록을 보니 수비 시프트가 걸린 1루 주자 상황에서 번트를 했을 때 기대 득점이 14.3%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번트가 의미있는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번트가 충분히 가치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도루는 성공 확률이 아주 높아야만 이득입니다

도루는 성공하기만 한다면 무조건 이득입니다. 당연한 말이죠. 공짜로 한 베이스를 진루한 거니까요. 그렇다면 도루는 과연 주자의 성공 확률이 얼마나 높을 때부터 이득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011년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메이저리그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보통 도루 성공률이 75% 정도일 때부터는 팀에 이익이 됩니다. 물론 아웃카운트별로, 그리고 2루 도루인지 3루 도루인지에 따라 팀에 이익이 되는 도루 성공률이 다르지만 대략 70~75% 사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서 도루가 성공했을 때 얼만 기대 득점이 증가하는지를 보면, 2루 도루는 무사에서 0.241점, 1사에서 0.155점, 2사에서 0.095점이 증가하고 3루 도루는 무사에서 0.250점, 1사에서 0.286점, 2사에서 0.044점이 증가합니다. 이 데이터를 놓고 보면 결국 2사 상황에서의 도루는 사실상 큰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재미있는 건 비교적 타석에 약한 타자가 있었을 때에는 도루의 가치가 높아지고, 강한 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에는 도루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아마 강한 타자는 일반적으로 장타율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공격 작전의 가치

앞서 설명한 데이터는 모두 메이저리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KBO와의 상황과는 약간 다른 점도 분명 있습니다. KBO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장타율과 대부분의 수비 지표가 모두 낮습니다. 기본적으로 작전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스몰 볼'이 트렌드인 동시에 작전이 더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죠. 이건 실제 통계에서도 나타나는데요. KBO 리그에서도 번트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기대 득점을 감소시키긴 하지만, 그 폭이 0.1점보다도 더 적어 메이저리그보다 작습니다.

2016년 리그별 경기당 도루 시도와 성공률


도루는 좀 흥미로운데, KBO는 2016년 경기당 도루 수가 1.47개로 MLB(0.52개) 보다 훨씬 많은 도루 숫자를 기록한 데 비해 성공률은 고작 66%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7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물론 도루 시도 자체가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도루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루를 시도하거나 도루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손해인 선수들까지 도루를 했기 때문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작전들의 가치가 실제 데이터로 뜯어보니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게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현장의 감은 중요합니다. 특히 단기전에서 작전과 감의 가치는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리그 페넌트레이스와 같이 긴 호흡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할 때에는 데이터 또한 굉장히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무조건적인 '작전 야구'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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