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이 입맛을 되살린다.
맛있어 보이는 외국 음식 사진을 보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떤 맛이 날까? 상상해 본다. 그러다가 궁금하면 레시피를 찾아본다. 레시피를 보고 마음속으로 조리해 보면 그 맛이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도 내가 외국 음식을 많이 먹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미 음식을 상상하면 라임과 하바네로처럼 매운 고추를 많이 사용하기에 새콤하면서 매운맛에 기름진 고기 맛이 난다. 서양 음식은 소스에 팔마산 치즈로 소금 간을 하기에 부드럽게 짜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먹어 본 중동 음식은 양고기와 갖은 채소에 향신료와 대추야자나 건포도를 같이 넣어 따진이라는 고깔 도기에서 조리한다. 말린 과일 때문에 음식들이 엄청 달짝지근하고 싱겁다.
내가 남미 음식을 먹을 때는 유지방이 많은 샤워 크림으로 매운맛을 순화시키고, 서구 음식의 짠맛은 쨈이나 꿀을 넣어서 단짠으로 만들어 먹는다. 모로코의 단맛은 짭짤한 치즈나 소금으로 짜게 만들어 먹어야 그나마 단맛이 줄어든다. 우리도 음식마다 설탕이나 올리고 당을 넣어서 달게 먹지만 여기는 싱겁게 달아서 참 적응하기 어렵다. 식사가 달아서 그런지 디저트는 더 달다. 모로코나 터키의 디저트 전문 가게에 가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하고 예쁘다. 마카롱처럼 색깔이 예쁜 로쿰 젤리나 견과류가 든 할바를 맛보라고 주는 것만 먹어도 입이 달다. 식후에 마시는 민트 차도 엄청 달다. 전통 커피의 쓴맛으로 달래보기만 향신료와 같이 끓이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항상 입안이 달달하다. 그래도 미국보다 슈퍼 비만이나 당뇨 환자가 적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를 종교적으로 잦은 단식에 있다고 본다.
나는 금연을 하면서 단식에 관심을 가졌다. 금연을 하려면 세 가지 중독을 벗어나야 했다. 첫째는 몸에 축적된 니코틴을 없애는 것이었다. 보건소에서 주는 금연 패치를 이용하여 쉽게 벗어 날 수 있었다. 둘째는 식후에 피는 습관처럼 버릇을 지워야 했다. 이는 잦은 군것질과 아메리카노 커피를 이용했다. 물론 내 뇌의 호르몬과 격렬한 싸움을 해서 겨우 이겨냈다. 셋째는 금연 후 불어난 살을 빼는 것이었다. 체중 감량을 위해 헬스에서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적절한 단식은 의지박약으로 포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마다 초코 과자 한 봉지를 혼자서 해치우는 나를 발견하고 과자부터 끊고 싶었다. 이때 문득 생각난 것이 이슬람 사람들의 단식이었다.
완전 금식은 못 해도 과자에 한해서만 단식을 하기로 했다. 단맛인 탄수화물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액상이라서 몸에 엄청 빨리 흡수되는 포도당이나 과당인 단당류이고, 둘째는 설탕처럼 정제한 이당류이다. 다당류는 밥이나 감자, 파스타들을 말한다. 나의 목표는 단당류와 이당류로 만든 주스나 과자를 끊는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필요한 포도당은 느리게 흡수되는 다당류로 버틸 수 있으니까 말이다.
탄수화물을 끊으면 제일 처음 나타나는 반응은 약간 어지럽고 과자가 엄청 먹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참았다. 이어서 나타나는 금단 증세인 어지럽고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면 밥과 김치로 간식을 먹었다. 딱 하루 24시간이 지난 아침에 두통이 왔다. 처음에는 커피에 시럽을 많이 넣고 마시니 두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두통의 원인이 당분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다음 날의 두통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신호라 여기고 시럽 대신에 두통약을 먹고 참았다. 그 사이 세 끼는 꼭 챙겨 먹었고 군것질은 여전히 김치와 밥으로 해결하면서 3일이 지난 후 오렌지 주스를 마셔보았다. 입맛이 초기로 돌아왔는지 조금만 마셔도 단맛이 확 느껴졌다. 늘 먹던 초코 과자도 너무 달아서 예전만큼 많이 먹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다음에는 너무 자주 마시는 커피에 도전했다. 커피 대신에 생수를 마시며 하루가 지나니 역시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틀을 참았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향과 맛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 지금은 그 맛을 느끼고 싶어서 자주 커피 단식을 할 정도로 맛과 향에 예민해졌다.
알코올 중독 증상은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담배는 아예 끊었고 설탕과 커피, 소금에 대해서는 지금도 가끔 단식한다. 이외에도 나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음식들이 많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믹스 커피와 라면이다. 아내는 매일 먹어도 괜찮지만 나는 먹고 나면 항상 위가 아팠다. 그래서 열흘에 한 번 정도 가끔 먹는데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고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맞는 음식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것을 단식을 통해서도 알았다. 그래서 몸에 맞는 음식 위주로 먹고, 맞지 않는 것은 단식하며 가끔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식의 효과를 제일 크게 느낀 것은 담배였다. 일단 숨쉬기가 편해졌고, 미각이 예전보다 훨씬 되살아났다. 외관상으로는 과자와 빵을 단식했을 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얼굴과 몸에 붓기가 빠졌고, 체중 감량도 되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건강해졌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끊을 것인지를 생각한다. 덕분에 식탐도 많이 줄었다.
술 취한 사람은 절대 취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처럼 커피나 설탕도 끊기 전에는 중독된 정도를 모른다. 끊은 후 두통이 심하게 오거나 금단 증상이 지독하게 나타난다면 많이 중독된 것이다. 그러다 중독에서 벗어나면 그렇게 좋아했던 음식을 보아도 데면데면해진다. 마치 내 입맛이 초기화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나는 원래 초콜릿이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님들처럼 아예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것보다 가끔 특정한 음식을 이틀만이라도 단식해서 입맛을 정화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을 짧은 단식을 통해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