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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맨 Feb 09. 2021

햄버거와 반미의  차이는 건강이다.

양념을 줄여야 건강해진다.       


우리 가게에서 치즈나 파스타 요리를 주문하면 바게트를 준다. 유럽에서는 테이블 셋팅비에 빵값이 포함되어 부담이 적지만 나는 공짜라서 은근히 부담된다. 처음에는 빵집에서 조금씩 샀다. 하지만 손님들이 생각하는 빵값과의 차이가 나를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바게트 재료는 밀가루, 물, 이스트에 개량제 약간이라 만들기는 쉬웠다, 지루한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빵은 겉이 딱딱하지만 속은 식빵처럼 촉촉하다. 빵만 먹어도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 손님들이 음식보다 빵이 더 맛있다며 좋아해서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운영하는 가게에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 힘들다. 바게트로 새 메뉴를 만들어 수익을 내면 덜 힘들 것이라 메뉴를 고민해 본다.

      

우선 내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프랑스에서 연성 치즈인 브리 치즈를 넣어 먹었을 때가 먼저 떠올랐다. 싱거운 바게트를 먹다가 만나는 치즈의 짭짤함과 삼킬 때 진한 크림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 유명한 푸아그라도 바게트에 바르니 거위 간의 기름진 풍미가 버터보다 더 맛있었다. 이외에도 크로아티아에서 구운 프랑크 소시지와 먹어도 맛있었고, 치즈와 잠봉 햄을 넣은 잠봉 뵈르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빵이 맛있으면 굳이 햄버거처럼 이것저것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유럽에서 알았다. 

그래서 나도 바게트 맛에 승부를 걸어 잠봉 뵈르를 새 메뉴로 결정했다. 시식을 한 단골들이 햄버거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고 만류한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충분한 한 끼 식사지만 햄버거와 비교하니 부실한 것은 맞다. 문뜩 이들을 합친 것이 베트남의 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람들이 바게트에 각종 향채와 베트남 어묵을 넣어 푸짐하게 만든 베트남식 잠봉 뵈르인 것이다.


반미는 육류나 치즈 위주의 서양식에 비해 채소가 많아 내 입맛에 제일 맞는 샌드위치이다. 반미를 먹어보면 처음에는 프랑스처럼 바싹한 빵이 좋다. 알싸하고 비린 고수의 향이 나고, 채소들이 제각각 씹히면서 마지막에는 수육 고기 맛이 입안을 맴돈다. 케첩이나 머스터드같이 강한 소스가 없어서 깔끔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닭 간으로 만든 베트남식 푸아그라인 빠떼와 마요네즈가 그나마 깊은 맛인 풍미를 준다. 

그래서 새 메뉴를 반미로 정했다. 나는 고기에 불고기 양념을 하고, 비싼 향채를 향신료로 대신하여 무채에 입혔다. 잘게 썬 양배추와 양상추로 신선함을 강조하여 내 스타일로 만들었다. 

내 것을 먹어보면 처음에는 바싹한 빵이 씹히고, 무채의 새콤달콤한 맛과 알싸한 향신료가 입안에 퍼진다. 신선한 채소와 고기로 마무리가 된다. 지방으로는 체다치즈와 마요네즈를 사용하여서 뾰족한 맛을 가진 내용물들이 제법 어우러지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해서 좋았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양념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내용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허전한 맛은 지방을 잘 선택해서 보완하면 되는 것이다. 

한 번 먹어 본 손님들의 반응도 좋다. 햄버거보다 건강식이라는 평이 제일 많다. 베트남에서 먹었던 반미보다 더 맛있다고도 하고, 지하철표 샌드위치보다 가성비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서는 쌀국수의 반대말이라 잘 팔리겠지만 우리는 밥이 강적이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아 점심에는 꼭 밥을 먹어야 하고, 저녁은 근기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끼일 틈이 없다.      


햄버거와 반미의 차이는 확실히 강약의 양념 소스에 있다. 햄버거의 기본 소스인 데리야끼는 한식의 간장 양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의 노포 햄버거에는 살코기와 향신료가 전부라서 별도의 소스가 없다. 살코기에는 감칠맛 성분이 많기 때문에 조미료도 필요이다. 다만 소금 간을 하듯이 치즈를 올려서 구워낸다. 불쾌한 맛이나 냄새는 어차피 향신료가 잡아주기에 양념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햄버거 패티 맛은 왠지 소고기로 만든 어묵 같은 느낌이다. 살코기가 적으니 감칠맛이 없어서 데리야끼라는 소스에 조미료를 넣고, 바비큐나 훈제 향을 첨가하여 고기 맛을 낸 것이다. 나도 기름지고 느끼한 미국식보다 단짠의 깔끔한 우리나라 햄버거가 더 좋기는 하다. 한국 햄버거가 맛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여태껏 양념 맛으로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라이드보다 양념 치킨을 좋아했고, 생고기보다 양념 고기를 더 좋아했다. 내가 맛있다고 한 요리는 재료 자체의 맛이 아니라 요리사의 마술이나 찬모의 손맛으로 결정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조미료가 없는 사찰 음식이나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어도 얼큰한 라면 한 그릇이 더 간절했던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면서 가끔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지혈증을 시작으로 성인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차 하는 마음에 건강식을 찾아보았다. 현미밥에 나물 반찬, 구운 생선, 두부, 샐러드 채소, 해조류들을 먹으라고 한다. 하나같이 양념이 없거나 적은 음식들이다. 어차피 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양념 치킨 대신에 후라이드에 소스를 찍어 먹고, 라면을 끓여도 수프의 반만 넣고 끓여 먹으면서 양념에서 해방되려고 노력했다. 단맛을 먼저 줄이고 그다음에 짠맛을 줄였다. 내 입이 점차 해방되니까 식재료의 맛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신선하고 비싼 채소들을 구입하게 되고, 재료가 신선하니까 소스나 양념에 비벼 먹기보다는 생으로 먹게 되었다. 무엇보다 양념이 적으니 포만감이 빨리 느껴져 예전보다 적게 먹게 되었다. 덕분에 뱃살도 저절로 빠지고 머리도 훨씬 맑아졌다. 지금은 식당 반찬들이 달고 짜서 젓가락 갈 곳이 없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도 마찬가지이다. 문득 내가 아는 외국인들이 한식이 너무 달다는 불평의 말에 이제야 공감하게 되었다. 이제는 고지혈 증세가 나아지는 것을 보면 한식의 양념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지금은 햄버거보다 내 반미가 훨씬 맛있다. 우리 손님들도 나처럼 양념 중독에서 벗어나 햄버거보다 반미를 더 좋아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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