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운동화를 빠는데 아버지가 미워졌다

아버지는 사랑을 배운 적이 없었다

by 달빛 타로

며칠 전부터 아들놈이 운동화를 빨아 달라고 졸랐다. '왜' 사춘기 남자 놈들은 흰 운동화, 흰 양발에 환장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뛰어노는데 검은색 운동화, 검은색 양발을 신으면 안 되니?"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아들의 운동화를 빨고 있다.

뜨거운 물에 과탄산소다를 섞은 다음 운동화를 넣고 30분 기다렸다. 부드러운 스펀지로 운동화가 손상되지 않게 문지르면서 운동화 빨래를 끝냈다. 쨍쨍한 햇빛에 운동화를 말리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 나에게 운동화 빨래는 기쁘고도 슬픈 일이다. 농사짓는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부모님을 도와 드리고 싶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화를 빨았다. 아들의 운동화를 빠는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참 무뚝뚝한 분이셨다. 내 운동화를 한 번 도 빨아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참 미웠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안 하셨다. 한 번이라도 아버지의 두 팔에 안겨 봤으면. 지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다정함이 그립다.


조용히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미운 것이 아니었다. 5살에 한국 전쟁을 겪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아왔던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버지에게 감정 표현이나 자아실현은 사치였다. 아버지는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이와 다정하게 지내는 방법, 감정을 나누는 법을 본적도 배운 적도 없는 분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다만 나에게 풍요와 교육의 기회를 주신 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오늘은 45살 아들이 5살 아버지를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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