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버지의빈자리를슬퍼했다. 슬픔을잊기 위해 농사에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엄마의 늙은 몸은 더 이상 농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는 현명했다. 한글 농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당연히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서툴렀다. 엄마의 한글 농사를 응원하고 싶었다. 연필 깎기를 선물하고 연필도 매끈하게 깎아 놓았다.
엄마는 봄이 되면 나를 기다린다. 직접 채취한 쑥으로 떡을 만들고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콩가루를 주려고 말이다. 나에게 자랑스럽게 한마디 하신다. "아들아 엄마가 한글 공부 열심히 했다. 비닐봉지에 콩가루도 내가직접 적었다. 집에 가져가서 애들이랑 잘 먹어라"
이 쑥떡은 몇 천 원을 주고 사 먹는 떡과 다르다. 엄마의 정성과 시간이 만든 건강한 쑥떡이다. 언제까지 엄마가 쑥떡을 만들 수 있을까? 집에서 콩가루를 묻힌 쑥떡을 먹는데 눈물이 난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엄마도 어렸을 때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 엄마는 자주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서당 훈장까지 하면서 여자는 배우면 안 된다고 학교도 보내주지 않았다. 우리 엄마만 살아 있었어도 초등학교는 졸업했겠지. 나는 그게 한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우리엄마의 아빠로 태어날 것이다. 엄마 대학 공부도 시키고 유학도 보내주고 싶다. 다 좋은데 고민이 생겼다. 엄마에게 '콩까루'가 아니고 '콩가루'로 적어야 된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다. 세종대왕에게 미안 하지만 우리 엄마가 '콩까루'라고 하면 '콩까루'가 답이다. 나는 우리 엄마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