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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형우 Feb 21. 2024

축제를 통한 청소년들의 희망 찾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동아리축제, 연극축제, 댄스 페스티벌, 록 페스티벌, 만화 페스티벌 등 무슨 크고 작은 행사마다 “축제” 혹은 “페스티벌”이란 용어가 유행어처럼 붙여지기 시작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고 청소년 축제 또한 청소년들의 일상화된 문화적 표현양식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축제사태”라 불릴 정도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청소년단체 등의 주도 아래 많은 축제가 기획되고 실시되고 있는데 겉으로는 꽤 다양한 이슈와 주제로 수많은 축제들이 열리는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의 논리로 둘러싸인 누가 빨리 소비하고 많이 소비하나를 부추기는 소비 축제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원래 축제란  어원상으로 어떤 일의 성사를 빌고 하례하는 축일과 신령에게 정성을 들이는 제일이 합쳐진 단어로서, 그 속에서 축일이 갖는 오락성과 제일이 갖는 종교성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축제는 이러한 종교적인 신성함과 놀이가 갖는 연희적 특성이 노래와 춤, 거기에 곁들인 술과 가락이 융합된 민속축제로서 그 모양을 갖추어 왔다.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치하의 식민주의 시대가 오기까지 굳건히 유지되어 온 대동 굿과 두레 굿은 일반 민중들의 공동체적 결합과 사회 내 민주적 통로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우리의 축제였다. 생산과 놀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던 우리의 축제는 1년의 땀과 노력의 과정을, 민주적 합의를 풀어내는 완벽한 공동체적 축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축제문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의 의미는 줄어들고 자본과 함께 밀어닥친 소비적인 문화에 의해 점차 일회성 이벤트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생산적이고 공동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파괴적이고, 낭비적이고 소비적인 특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축제의 문제점들은 청소년들의 축제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축제를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지역사회의 청소년시설 또는 청소년단체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노래와 댄스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아리 발표회, 경연대회 정도의 축제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 또한 1등, 2등, 3등... 꼴등으로 순위를 매겨 청소년들에게 공동체 형태의 축제에 접근시키기보다는 도리어 경쟁심을 부추기고 대학입시에 있어 또 하나의 수단이 되는 일회성 이벤트 행사로 전락시키고 있다.  


  청소년문화의 구체적인 표현형식이라 할 수 있는 청소년축제에 이러한 경쟁, 상업주의가 부정적인 형태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청소년들 또한 일상생활의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축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들의 축제가 일회적 이벤트성 소비적인 기능만이 존재하고 정부나 기성세대들이 던져주는 당근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청소년들의 축제는 당연히 사라져야 하지만 과거 우리의 대동 굿과 두레 굿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청소년들의 축제도 당연히 존재해야 할 타당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 


  제도권교육이 갖고 있는 한계성과 식민화되어 가는 문화감수성, 단절되어 버린 기성세대와의 소통문제, 그리고 청소년들의 권리 찾기를 위해서도 청소년축제는 살아야 한다.  


  경제발전과 성장, 진보의 논리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제도교육은 시대적인 기능을 잃어버린 채 많은 청소년들을 거대한 소비문화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경제가 발전한 후에만 문화도 발전할 수 있고, 그 문화의 발전은 국가가 지원하고 투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발상에서는 고부가 가치시대의 인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을 보호와 선도, 육성으로만 가두어 두려 하는 기성세대와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소비라는 미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해야 할 말, 기본적인 권리조차 빼앗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청소년들의 축제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라는 오래된 어느 광고 카피처럼 청소년들의 공동체,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할 축제에서조차 등수를 가려 1등에겐 많은 상금과 명예를  수상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절망과 패배감을 안겨주는, 그리고 화려한 조명과 무대 위에서는 몸값(?) 비싼 유명한 연예인들이 춤을 추고, 구색 맞추기를 위해 몇몇 잘 나가는 청소년 동아리 공연이 있는 그런 축제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축제 과정 속에서 청소년과 청소년전문기획자 집단 쌍방이 서로 소통하는 문화적인 행위가 되지 못하고 일방적인 보여 주기식의 축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잘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잘할 수 있게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며 기다려 주는 것,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들이 존재하는 것, 남과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설득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는 것, 조금은 어설프지만 땀 흘려가며 친구들과 함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 이 모두가  바로 축제의 과정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과정들이 모아져 조금은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프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구경꾼으로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만들어져 함께 즐겨야 한다. 또한 그런 과정 속에서 청소년들이 “다름과 차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라는 어느 영화 제목처럼 이 세상도 그런 다양함 속에서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청소년축제가 살아야 할 이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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