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고 추운데 해장은 해야겠어_물냉면

[40대 혼자남의 먹방일기]

by 아직없음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3월 중순을 넘겼지만 날이 제법 쌀쌀했다. 궂은 날씨에 뜬금없이 물냉면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전날 들이부은 술 탓이다. 내친김에 냉면 육수로 해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차가운 면발에 대한 열망이 옅어졌다. 빈자리는 왕만두가 채웠다. 별수 없다. 오늘은 물냉면에 왕만두 조합이다. 겉은 추워도 속은 덜 깬 술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 몹쓸 열기를 식혀야 살 것 같았다.


오전 업무를 끝내고 서둘러 냉면집으로 향했다. 내방역 인근 흥미면옥. 전국구 맛집은 아니어도 근처 직장인과 주민들이 알음알음 찾는 동네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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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냉면과 왕만두 반 접시를 주문했다. 반 접시엔 큼지막한 만두 세 알이 나온다. 가격도 절반이다. 나 같은 혼밥러에겐 퍽 고마운 구성이다.


냉면 이야기만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평냉파'들이 주변에 널렸다. 평양냉면에 소주를 곁들여야 진짜 맛을 안다느니, 아직 평냉의 참맛을 못 깨달았다느니 훈수를 둔다. 아무리 들이켜도 나는 평양냉면이 싫다. 맛이 없다. 미각의 '무(無)' 상태다. 걸레 빤 물을 마셔본 적 없지만, 아마 마신다면 평냉 맛일 거라 확신한다.


지독한 평냉파 친구 하나는 냉면에 식초나 겨자를 치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했다. 평양냉면에 대한 모독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존박도 그리 먹는다면서.그때는 평냉파들이 그렇게 아주 꼴값들을 떨어댔다ㅋㅋㅋ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동행한 우리 측 연예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평양냉면이 올랐다. 정작 평양 사람들은 냉면에 겨자와 식초를 듬뿍 쳐서 먹는 단다. 아무것도 안 넣고 먹어야 진짜 아니냐는 남측 질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안 넣으면 맛없어서(?) 어떻게 먹느냐고 반문했다.


그날부로 나는 친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쥐뿔도 모르면서 왜 아는 척 꼴값을 떨었느냐고. 네 논리라면 평양 사람들은 자기들 냉면을 모독하고 있는 거냐고. 호되게 갈궜다.


친구는 그 뒤로 평냉의 '평' 자도 꺼내지 않는다. 지금도 누군가 평양냉면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친구를 지그시 바라보며 예전에 꼴값 떨던 거 생각나냐고 기억을 떠올려준다.


나는 100% 함흥냉면 파다. 쨍한 물냉면 한 그릇에 만두 세 알을 밀어 넣으니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린다. 물냉면은 해장계의 숨은 강자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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