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퇴근길 한 끼] 40대 혼자남의 저녁밥 먹은 이야기

by 아직없음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유난히 추웠다. 오늘 아침 서울은 한파주의보란다. 머릿속에 ‘이런 날은 오뎅바에서 뜨끈한 국물에 따뜻한 사케 한잔이 딱인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전 내내, 아니 점심이 지나서도 ’오뎅바와 사케’가 생각났다. 점심에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저녁에 오뎅바 가야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따끈한 국물을 먼저 한입, 다음은 뜨끈한 사케 한 모금, 달달하면서 쓴 사케를 넘기고 나선 어묵을 하나 집어 겨자를 푼 간장을 살짝 묻히고 한입. 한입 한모금이 몸을 녹이고, 두입 두모금에 마음을 녹이고, 세입 세모금에 알딸딸해져야지. 행복했다.


낮부터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더니, 퇴근 즈음에는 많이 풀렸다. 거짓말처럼 오뎅바와 사케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하루의 계획이 틀어지고, 삶의 이유와 목표를 잃었다. 퇴근 후 집에 와 30분을 가만히 멍때렸다. ‘이제 난 뭘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심지어 입맛도 잃었다. 마음이 공허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삶은 계속돼야 한다. 쇼 머스트 고우 온.


가볍고 산뜻하면서 입맛을 돋구는 뭔가를 찾았다. 그러다 찾은 ‘생마차’. 가끔 맥주가 생각날 때 혼자 찾던 곳이었다. 그래 생마차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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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원짜리 생맥주를 한모금하는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맥주가 맛있었던 적이 있던가. 꿀꺽, 목을 넘어갈 때마다 감탄했다. 그리고 안주로 시킨 아지후라이. 꿀맛이었다. 맥주와 너무 잘 어울렸다. 최근 가장 맛있게 먹은 맥주와 안주였다.


내친김에 하이볼도 시키고, 오꼬노미야끼도 시켰다. 입맛을 잃고 가볍고 산뜻한 것을 찾던 나는 오늘도 헤비하고 걸쭉하게 들이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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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세운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 상황이든, 내 마음이든, 무엇이 원인이 건 간에 계획이 무너지면 방황을 하게 된다. 몸도 마음도 어디에 가야할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이대로 저녁을 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은 안든다.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다 보면 뜻밖에 기쁨을 맞이하기도 한다. 별거 아닐지라도, 우리는 무너지고 또 위로 받는다. 오늘 하루,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며 어떤 기쁨이 날 맞이해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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