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고 싶어서 복어 먹은 2025 마지막날

[오늘 점심은] 40대 혼자남이 점심밥 먹은 이야기

by 아직없음

2025년의 마지막날이다. 전날 회사에서 종무식을 하고 대규모 회식을 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오늘도 쉬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서에서 오전 중에 최대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꼭 해야하는 업무를 마친 사람은 일찍 퇴근하자는 부장님(본인이 힘들어서 그런 거 같음) 말씀에 감동을 받은 나는 폭풍 집중력을 발휘해 오전에 일을 마치는 기적을 일궈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휴가를 썼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낮술을 제안했다. 안받을 이유는 없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나이가 한살 더 먹기 전 마지막날일 뿐이었는데, 친구의 낮술 제안에 조금 특별한 날이 됐다.


친구는 복지리를 먹자고 했다. 평소 눈여겨보던 집이라며 오늘같은 날 복을 먹어야 한다는 너스레까지 더해지자, "그래. 오늘같은 날 복 한번 먹어보자!"라고 생각하며 승낙했다.


나는 천한 신분이라 양반들이 잡수시는 복지리와 같은 고급음식을 평소에 영접하기 힘들다. 이름도 복스럽다. 복지리라니!


한창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자 마자 가방놓고 바로 출발하려는데,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아씨 회의하재. 마지막 날 휴가인데도 일을 시키냐. 30분만 늦추자. 미안하다. 점심 내가 쏠게.”


30분만 늦추자는 말에 순간 "야, 회의 째"할 뻔 했지만, 그의 진심어린 사과에 나는 관대해졌다. 그가 복지리를 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사과의 진정성 때문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늦은 점심 낮술도 괜찮지.


어쨌든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점심특선이 보였다. 복지리 11000원. 밀복지리라는 게 있는데 그건 15000원이었다. 나는 밀복지리가 먹고 싶었다.

1.jpeg 복도 맛있지만, 미나리와 콩나물도 맛있다

늦게 도착한 친구는 미안하다며 복지리 2인분을 주문했다. 22000원이다. 소주는 5000원. 여기 가성비 좋지 않냐며 나를 보고 웃는 그 친구의 죽빵을 날리고 싶었지만,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마당에 이런 걸로 주먹다짐을 할 순 없었다. 사실 가성비가 좋긴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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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있었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이 친구와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같은 회사도 다녔었다. 그때 회사 옆에는 아주 비싼 복집이 있었는데, 나중에 거기도 가보자며 나에게 이건 내가 사니까, 그건 네가 사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순간 그의 아랫턱에 시선이 집중됐고, 댐프시롤을 날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참았다.


어쨌든 오랜만에 영접한 복은 맛있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친구가 사실 나는 그 비싼 복집을 한번 가본 적이 있다며 그때 거기서 먹은 복불고기가 정말 맛있으니, 꼭 한번 가자며 다시한번 ‘근데 그건 네가 사라’했지만, 나는 불혹의 인내심을 발휘해 그의 아랫턱을 쳐다만 봤다. 산다는 말 또한 참았다. 산다는 말을 참는 건 아주 적은 인내심으로도 가능하다. 난 살 생각이 전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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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복지리는 정말 맛있었다. 추운 날씨에 복어와 국물을 함께 먹으니, 올 한 해 다사다난 고생한 내가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밑반찬으로 나온 내가 좋아하는 오이와 복어껍데기 무침도 기가 막혔다. 마지막 볶음밥까지 '갓벽'했다. 2025년의 마지막 점심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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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이글을 보는 모두, 2025년 고생많으셨습니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고, 건강 지키면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ps2. 근데 왜 복어는 이름이 복어일까? 독어가 아니라.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이걸 먹기 시작했을까?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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