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한 끼] 40대 혼자남이 저녁밥 먹은 이야기
나에게는 주 1회, 적어도 월 2회, 많으면 주 3회까지도 보는 친구가 있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데, 우리는 주로 술을 마신다. 아주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이성 아니고 동성이다. 친구는 결혼을 했는데, 친구의 와이프가 그럴 거면 “왜 자기랑 결혼했냐? 그 사람(나)이랑 결혼하지?”라고 농담까지 할 정도다. 친구는 남자끼리 결혼을 어떻게 하냐고 받아쳤다지만, 사실 우리는 손끝만 스쳐도 서로 불쾌해 하는 사이다.
한번은 친구를 만나 치킨에 소주를 먹는데(이 친구는 무조건 소주파다), 오늘 사실 자기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놀라자, 친구가 사실 와이프가 바빠서 주말에 저녁 먹기로 했다면서 “그럼 나 xx(나) 만나서 저녁 먹고 들어가도 돼?”라고 물어봤단다. 정말 기겁해서 그날 케이크를 사줬다. 내가 사줬다고 꼭 말하라고 당부하며. 근데 이 새끼는 아마 지가 샀다고 했을 듯.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친구 두 명, 이렇게 네 명이 만나 술을 한 잔 했다. 모두 남자다. 이 중 한 명은 지난 복지리 편과 감자탕 편에 나왔던, 2025년 마지막 날 점심과 2026년 첫날 저녁을 함께 먹은 놈이다.
나는 친구를 '피치고삼칼'이라고 부른다.
대체로 우리는 벙개로 만나는데, 오후 4~5시쯤(애주가에게 이 시간은 술시다. 전날 마신 술이 적당히 깨고 혈관에 흐르는 알코올이 빠질 즈음, 몸이 다시 알코올을 찾게 되는 시간. 나는 절대 애주가가 아니며, 술은 즐길 정도로만 마시고, 솔직히 그 쓴 걸 왜 마시냐 싶다. 친구가 애주가고 난 아니다. 난 진짜 아니다) 연락해 만나기로 하고 메뉴를 정할 때, 친구는 피자, 치킨, 고추장삼겹살 중 하나를 고른다. 점심이면 칼국수. 그래서 앞글자만 따 피(자), 치(킨), 고(추장)삼(겹살), 칼(국수). 피치고삼칼이다.
친구는 이 별명을 매우 좋아한다. 어느 날 내가 그의 와이프에게 피치고삼칼에 대해 말했는데, 그의 와이프도 좋아했던 것 같다. 뻥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피치고삼칼이 뜬금없이 작년 중순쯤부터 대구뽈찜에 빠졌다. 피치고삼칼의 명성답게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것만 먹는다. 그 덕분에 나도 몇 번 다녀왔는데, 맛은 또 기가 막히긴 하다. 피치고삼칼은 모임도 거기서, 회식도 거기서 한다고 했다. 미친 사람. 진짜로 미친 사람.
사실 나는 먹는 것의 베리에이션이 넓지 않다. 마라는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고수나 샐러리는 아예 입에 대지 않으며, 어쩔 수 없이 쌀국수 등을 먹게 돼도 남긴다.(못 먹겠는데 어떡해요) 평냉은… 그건… 아 못 먹겠다. 한번 도전했는데, 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앞에서도 말했지만 짬뽕도 해물은 안 먹는다. 매운 것도 싫다. 전 여자친구는 이런 나에게 “아주 왕자님 납셨네”라고 했다. 히히. 볼혹에 왕자님 소리 듣기가 어디 쉽나?
그런 나에게 이 대구뽈찜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피치고삼칼에 질려 있던 나는 새로운 건 뭐든 좋다고 생각하며 도전을 외쳤고, 와! 진짜 맛있게 먹었다.
일단 이 뽈찜을 딱 보면 좀 이렇게 저렇게 뒤집뒤집해서 양념이 좀 섞이게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아주머니께 혼난다. 으스러지기 쉬우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실제로 이날이 아닌 다른 날, 친구는 혼났다고 했다. 절대 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조심조심 그대로 떠서 콩나물과 뭔지 모를 초록색 야채(많이 볼 수 있는 흔한 거고 이름을 분명 알고 있지만 까먹었다. 흔하고, 삼겹살이랑도 같이 먹고 그랬었던 건데...)와 먹으면 매운데 맛있다. 맵기는 조정할 수 있는데, 우리는 늘 순한 맛을 먹고, 순한 맛은 신라면 수준이다. 그래도 맵찔이인 나에겐 매운 편이다.
땀을 좀 흘리며 먹으면 소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나는 애주가는 아니고 즐길 정도인데도 쓴 소주가 맛있게 느껴진다. 입에 쓰면 몸에 좋다는데 술과 아메리카노는 쓴데 몸에도 안 좋다. 하지만 인생이 쓰면 술의 쓴맛이 달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건 또 뭔 소리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취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긴 볶음밥도 먹어야 한다. 정신없이 취하느라, 아니 먹느라 사진은 못 찍었다. 근데 진짜 꼭 먹어야 한다.
피치고삼뽈칼로 진화한 친구 덕에 입이 호강했다. 서울에서 뽈찜하는 곳을 찾기 힘든데, 후암동에 있다. 후암동 '월순철판동태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