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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의 측정

by 예재호

1. 집에서 잰 혈당은 잘만 나오는데 병원에서만 재면 높게 나와서 당황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오늘은 혈당측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 요즘에야 간단하게 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1,2초 만에 숫자로 혈당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가정에서 혈당을 쉽게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3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일입니다. 처음에는 혈액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방식도 아니었습니다. 의사들은 와인의 당도를 측정하는 당도계로 환자의 소변을 검사하여 혈당을 유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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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糖尿)는 '달콤한 오줌'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에서 유래]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PvSmCGgWje?xmt=AQF0iFTJ78nIbUV3sKPd5t-AjTTKNLqZZQHKFKkjlvT2rg


3. 최초의 가정용 혈당 측정기는 검사지의 색깔 변화를 기계가 판독해서 수치로 표시해 주는 장치였습니다. 무게는 약 1kg이었고 당시 가격은 650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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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0년대에 우리가 쓰는 혈당기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 기기가 나왔습니다. 이전처럼 검사지의 색깔 변화를 수치화해 혈당을 추정하는 방식이 아닌, 전기화학적 방식을 이용하는 식으로 바뀐 덕에 측정에 필요한 혈액량이 줄어들고 측정시간도 단축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검사지 전체를 피로 적셔야 했으므로 지금보다 피가 훨씬 많이 필요했습니다.)


5. 지금 쓰는 혈당계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혈당측정검사지(스트랩)에 코팅된 효소가 포도당을 산화시켜 그 결과 방출되는 전자의 양을 측정합니다. 혈액 속에 포도당이 많을수록 전자가 많이 방출되고 많이 방출된 전자는 더 큰 전류를 흐르게 해 높은 숫자로 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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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반적인 혈당 측정기의 최대 측정 한도는 500mg/dl 정도입니다. 이 이상으로 측정될 경우에는 최대 측정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로 HI로 표시됩니다. 너무 높은 혈당은 검사지에 코팅된 효소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리므로, 방출되는 전자의 양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7. 더불어 너무 높은 혈당이 확인된다면 정확한 혈당을 알아내는 것보다는 최대한 빨리 병원을 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도 숨겨져 있습니다. 병원용 장비는 1000mg/dl 이상의 혈당까지 측정이 가능한데, 혈당을 측정하는 원리는 동일해도 정밀하게 희석함으로써 더 큰 범위의 혈당도 측정이 가능합니다.




8. 가정용 혈당계로 측정한 혈당이 높게 나와도, 고장이 났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데, 혈당계에 대한 국제 표준이 마련되어 있어서 웬만하면 기계를 믿어도 됩니다.


9. 다만 혈당측정검사지(스트랩) 보관을 잘못하면 혈당을 측정하는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스트랩의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습기에 노출되거나 하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포도당과 반응하는 효소의 상태가 변하므로 대부분은 높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낮게' 잡히게 됩니다.


10. 채혈침으로 찌른 뒤 맺히는 피의 양이 적다고 짜내듯이 압력을 가하면 조직액이 섞이게 되어 정확한 혈당 측정에 문제가 됩니다. 이 경우에도 아쉽게도(?) 혈당수치는 낮게 측정됩니다. 더불어 손을 씻거나 알코올솜으로 닦은 뒤 충분히 말리지 않은 채 검사를 진행해도 혈액이 희석되므로 '낮게' 측정될 수 있습니다.


11. 높게 측정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특히 손가락에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가 있다면 높게 나옵니다. 바나나 껍질을 만진 뒤 혈당을 재어보면 300mg/dl이 넘게 나오기도 합니다. 혈액이 아니라 음식물에 있던 당이 스트랩의 포도당 산화효소와 반응한 것입니다. (참고로 병원에서 자꾸만 높게 나오는 것도 일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당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12. 최근에는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개정된 2025년 당뇨병 진료지침에서도 연속혈당측정기(CGM)를 권고하는 환자군을 더 확대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식사나 운동 등의 생활 패턴을 점검하고 본인의 당뇨 관리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비록 고가이긴 하지만 CGM을 착용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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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반적인 혈당계가 혈액의 포도당을 측정하는 데 반해 CGM은 조직액의 포도당 수치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실 CGM이 채혈 측정에 비해 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혈관에서 조직액으로 포도당이 이동(확산)하는데 15분가량 소요되므로 실제 혈당의 변화보다 늦게 반영됩니다. 그래서 인슐린의 용량을 결정하거나 저혈당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채혈을 통한 자가혈당측정(SMBG)이 필요합니다.


14. 그렇게 비싼 데도 겨우 2주밖에 못 쓰면서, 정확하지도 않다니 실망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사실 CGM은 일시적인 혈당의 높고 낮음을 확인하기보다는 패턴을 확인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15. 실제로 의료진이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최소 14일간의 데이터로 생성된 활동혈당개요(AGP) 보고서입니다. AGP에서 의사들은 TIR(목표혈당범위)가 관리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보고, 달성하지 못했다면 저혈당 지속시간(TBR)에 여유가 있는지, 없다면 식사에서 탄수화물이 과도했는지 등을 확인하여 치료 계획에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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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목표혈당범위 (70-180mg/dl) 내 시간이 70%인 경우 당화혈색소는 7%에 해당하며, 목표혈당범위 내 시간이 50%로 감소하면 당화혈색소는 8%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하루 중 목표혈당범위 내 시간이 10% 변동이 일어날 경우 당화혈색소 0.6%의 변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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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당화혈색소가 놓칠 수 있는 혈당 변동성과 저혈당 발생 횟수를 파악하는 것도 CGM의 장점입니다. 같은 당화혈색소 7% 의 환자라도 TIR이 높고 TBR이 낮다면 안정적이라 할 수 있고, TIR이 낮고 TBR이 높다면 저혈당이 자주 발생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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