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의 자기 관리 (11)
1. 오늘은 고기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2. 단백질은 탄수화물에 비해 소화 과정이 길고 복잡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고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단백 식단은 체중 감량 목적과 당뇨병 예방 목적으로, 당뇨 환자가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흔히 택하는 전략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뇨를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한 환자 중에도 ‘탄수화물은 딱 끊었고 고기만 먹는다.’며 말씀하시는 분이 종종 계십니다.
3. 이런 고단백식이에 대한 호감과 신뢰는 다른 영양소를 기피하게 됨으로써 생긴 반사이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탄수화물은 다름 아닌 당뇨의 직접적인 원인이니 먹기 꺼려지고, 지방은 살이 찌고 고지혈혈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줄여야 할 테니, 결국 필요한 칼로리를 마음 편히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단백질 외에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4. 하지만 단백질도 탄수화물로 전환되어 쓰입니다. 게다가 그 속도는 지방보다 빠르고 신속합니다. 간과 신장에서 분해되고 전환되는 데 시간이 걸리니 급격한 혈당 상승은 없지만 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혈당을 올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식사 후 3~5시간의 혈당 상승은 탄수화물이 아닌 단백질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5. 그래서일까요? 단백질 섭취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고 보고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6. 위 논문은 미국 역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2016년 발표되었습니다. 205,802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3개의 코호트 연구 데이터를 통합하여 단백질과 당뇨병 발병 위험 간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한 메타 분석 논문입니다. 논문에서는 단백질의 섭취량뿐 아니라 동물성 단백질, 식물성 단백질 섭취와 2형 당뇨병 발병 위험 간의 연관성도 조사했습니다.
7. 이 논문에서는 (안타깝게도) 단백질 섭취가 많은 그룹에서 당뇨병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식사에서 단백질 섭취가 가장 많은 그룹이 반대로 가장 적게 먹는 그룹에 비해 발병 위험이 7%나 높게 나왔습니다. (HR=1.07) 이러한 결과는 다른 요인을 충분히 보정한 뒤의 수치였습니다.
8. 단백질 섭취가 많은 연구 참가자의 특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 볼 필요는 있습니다. 단백질 섭취가 많은 그룹은 BMI는 높았지만, 흡연율이 낮고 신체 활동은 많았고, 당뇨병 가족력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설탕이 들어간 음료나 가공육은 즐기지 않았으며, 견과류 섭취는 즐기지 않았습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건강에 자신이 있고, 활력이 넘치며, 고기를 잘 굽고, 과체중이지만 뚱뚱해 보이지는 않는 중년 남성(혹은 여성)이 떠오릅니다.
9. 그런데 모든 단백질이 당뇨의 위험도를 올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물성 단백질과는 달리 식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반대로 당뇨의 위험도가 낮았습니다. 칼로리 섭취량은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영양소 비율을 변경해 본 효과도 동일합니다. 단순히 탄수화물을 단백질로만 바꿨을 경우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탄수화물을 식물성 단백질로 변경하면 당뇨병의 위험은 22% 감소했습니다.
10. 문제는 단백질의 양이라기보다는 단백질의 공급원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이런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보고됩니다. 유럽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그룹이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22%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EPIC(European Prospective Investigation into Cancer and Nutrition)-InterAct Case-Cohort Study) 역시 콩류나 견과류와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은 그룹은 가장 적게 먹는 그룹에 비해 당뇨의 발생률이 9% 낮았습니다.
11. 이전에 저탄수화물 식이법에서 다룬 내용입니다만, 초저탄수화물 식이 이른바 케토제닉 식사법이 심장마비와 뇌졸중과 같은 주요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2배 이상 증가시켰다는 결과 또한 동물성 식품 섭취가 과도한 것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고기(동물성 단백질)가 맛도 있고 참 좋습니다만 주의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12.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식물성 단백질을 탄수화물 대신 먹는 전략을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탄수화물, 즉 통곡물 위주로 먹던 사람이 단백질로 바꾸어 섭취할 경우 되려 당뇨의 위험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탄수화물 품질을 유지한 채로 단백질 공급원을 식물성으로 바꾸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 이미 당뇨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분의 단백질 섭취에 대해서도 다뤄야 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당뇨 환자는 의사와 환자 모두 신장기능의 저하나 단백뇨의 출현, 혈중 크레아티닌의 상승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과도한 단백질 섭취에 주의하고 되도록 저단백식이를 권유받습니다.
14. 하지만, 당뇨병환자에서 단백질 섭취 제한이 혈당 감소와 심혈관질환 위험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는 제한적입니다. 알부민뇨가 있거나 사구체여과율이 감소한 환자에서 신장질환 진행을 지연시키기 위해 시도한 단백질 섭취 제한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단백뇨의 감소 효과도 불분명했습니다.
15. 이에 주요 당뇨병 진료지침에서는 신장기능의 저하가 없는 당뇨인은 일반인과 동일(0.8g/kg/일)하게 단백질을 섭취하되, 과하게 먹는 것만 피하기를 권고합니다. 하루 섭취 칼로리의 20% 이상을 단백질로 먹거나, 1.3g/kg/일 이상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독려합니다.
16.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면 단백질을 포함한 다른 영양소의 섭취마저 부족해질 수 있으니 제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투석을 받는 당뇨병신장질환 환자는 일반인보다 더 많은 단백질 섭취(1.0–1.2 g/kg/day)가 필요합니다. 투석 과정에서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상당히 손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기,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보이는 까닭에 대해서 짚어보겠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먼저 식물성 단백질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거나 낮은 장점이 있습니다. 앞서 다뤘다시피 포화지방은 당뇨의 위험성을 올립니다. 더불어 식물성 단백질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며 항산화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구조가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헴철(heme iron)과 가공육의 첨가물 등이 당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 짐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