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스피린은 일주일이나 끊어야 하는가?

혈소판 (2)

by 예재호

1. 왜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다 하면 의사들은 약을 끊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할까요? 하루나 이틀로는 부족한 이유가 뭘까요? 반대로 일주일이면 충분히 안전한 걸까요? 저는 아스피린을 먹는데 혹시 응급수술을 받을 일이 생기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피가 멎지 않으면 어떡하죠?)




2. 지난번 글에서 혈소판이 세포가 아니라 거핵세포에서 분리되어 혈관으로 나온 부스러기라고 말씀드린 것 기억나시나요? 이 부스러기에도 세포의 일부 구조는 있습니다. 비록 핵(설계도)이 없으므로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해 내거나 자손을 만들(분열) 능력은 없습니다만 포도당을 흡수하고 흡수한 에너지를 이용해 ATP를 충전하는 미토콘드리아까지 엄연히 구비되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155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SZQp1rgZ95?xmt=AQF0VSGZtjMuUKUcVqiaBxYU8dgBQzDKEkcAgZZ5w5dx-w


3. 그냥 구멍을 막는 패치 주제(?)에 이런 거창한 구조까지 갖고 있어야 할 이유는 1) 구멍을 찾고 2) 그 구멍에 달라붙는 일을 혈소판이 혼자서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피가 콸콸콸 흐르는 와중에 → 구멍이 난 곳을 찾아 → 무사히 닻을 내려 위치를 잡고 → 그 자리에서 미 끌어지지 않고 찰싹 달라붙어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혈소판 입장에서 본다면 혈류는 계곡 래프팅만큼이나 거친 환경일 겁니다)


extrafting.png

4. 게다가 혈소판은 누가 친절하게 타깃을 선정해 주고 위치를 안내해 주면 명령에 따라 임무만 수행하면 되는 유도탄 시스템이 아닙니다. 결정과 수행을 모두 독자적으로 해야 하는, 일종의 특수부대와 더 비슷합니다. 그런 작업을 해내려면 그냥 단순한 구조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습니다.


autosystem.gif 이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5. 지혈 과정이 방수 테이프를 '착' 붙이는 것 마냥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더 있습니다. 구멍이 나지 않았는데 패치가 슬그머니 작동해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혈전성 질환이 바로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심지어 혈소판은 매우 민감한 폭탄과 같아서 생각보다 쉽게 활성화됩니다. 지난번 글에서 헌혈받은 혈소판은 굳지 않도록 항상 교반 해줘야 하고 온도도 맞춰 줘야 한다는 점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아래 사진에서 왼쪽의 점잖은 혈소판은 조금만 심사가 뒤틀려도 금새 오른쪽의 흥분형으로 바뀝니다.


activatedplt.png


7. 그래서 의사들은 혈소판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반대로 너무 과하게 작동하는 상황을 더 염려하는 편입니다. '일주일씩이나 끊어야 하는' 아스피린을 쉽게 권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007_bond.png 뇌졸중을 만들어버린 007 혈소판


8. 다행히 우리 몸에서는 '진짜, 정말, 확실히, 누가 봐도 피가 난 곳'만 지혈 과정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확인 과정을 거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007_2.png 007(혈소판)을 정직처분하기 위해 의사는 와파린 등을 씁니다.


9. 혈소판의 과잉 대응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므로 이 검증 경로는 매우 복잡하고 꼼꼼합니다. 이른바 응고연쇄반응(coagulation cascade)이라 불리는 이 복잡한 과정은 (비공식적으로) 의대생이 가장 헷갈려하는 내용 1,2위를 매년 다툽니다. 까짓것 이쯤이야 하시지 마십시오. 이걸 완벽하게 외우지 못하면 혈우병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저를 포함해서-는 몰라도 됩니다)


coagulation pathway.png




10. 복잡한 응고연쇄반응 중에 트롬복세인 A2라는 것이 있습니다. 트롬복세인 A2는 구멍을 최초로 발견하고 닻을 내리는 데 성공한 ‘혈소판 1‘이 다른 혈소판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신호입니다. 트롬복세인 A2가 혈소판에서 분출되면 친구 혈소판들이 얼씨구나 하고 엉겨 붙습니다.


THROMBOXANE.png


11. 우리가 잘 아는 아스피린은 이 트롬복세인 A2를 억제합니다. 트롬복세인 A2가 만들어지기 위한 효소 COX-1을 방해하기 때문인데요. 아스피린에 의해 영향을 받은 혈소판은 트롬복세인 A2를 만들어내지 못해 구멍을 발견하고 닻을 내리는 것까지는 성공해도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SOS_ofplat.png


12. 물론 '여기 구멍 났어, 다들 이리와서 나 좀 도와!!'라는 신호가 트롬복세인 A2 뿐인 건 아닙니다. 지난 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출혈은 우리 몸에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으므로 다른 SOS 신호도 존재합니다. ADP라고 하는 혈소판에서 방출하는 신호도 있고, 혈관 내피 세포가 상처 입으면서 나오는 vWF라는 신호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스피린을 먹다가 코피가 나더라도 웬만하면 멎습니다.


13. 의사들은 아무리 아스피린을 먹고 있었다 해도 위급한 상황이라면 지혈이 잘 안 될 걸 각오하고 수술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데스모프레신이나 트라넥사민산 등과 같은 지혈 보조제 (antifibrinolytics)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 혈소판을 수혈해 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급한 상황이 되면 아스피린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4. 그런데 잠깐,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아스피린이 혈소판으로 하여금 SOS 신호를 내지 못하게 한다면 새 혈소판을 집어넣는다고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나? 싶은 겁니다.


15. 아스피린을 중단한 뒤 일주일 뒤에나 시술을 할 수 있다는 건, 반대로 아스피린의 영향력이 최소한 일주일은 간다는 이야기같은데 그 영향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혈소판을 새로 넣어준다고 아스피린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맞습니다.


16.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의외로 아스피린의 반감기는 기껏해야 20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은근히 작용 시간이 짧은 약물입니다. (뒤에 이어질 내용입니다만) 그래서 당뇨 환자에게 하루 한 번 먹는 아스피린으로는 혈소판의 흥분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소 하루에 두 번은 먹어야 과잉 지혈 위험 상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아스피린이 그만큼 작용시간이 짧고 당뇨환자는 그만큼 응고가 잘 되는 상황이니까요.


17. 아스피린의 반감기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앞뒤가 맞지 않아서 혼란스럽습니다. 20분이면 몸에서 없어질 아스피린을 왜 대체 일주일 씩이나 끊어야 혈소판의 지혈 작용이 정상화된다는 걸까요?


18. 이렇게 역설적인 일이 일어나는 아유가 바로 혈소판은 세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무를 하달받고 혈액 속으로 방출될 때 들고 나온 효소 외에는 더 만들 수 없는 혈소판은 아스피린에 의해 한번이라도 공격받으면 더 이상 SOS 신호(트롬복세인 A2)를 못 만들어 냅니다. 핵(설계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핵을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세포라면 다시 효소를 제작할 수 있는 것과 차이가 납니다.


fish.png 고기잡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이유


19. 그래서 혈소판이 한번이라도 아스피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 완전히 갈아 주어야 응고 지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혈소판의 수명은 일주일 정도이므로 영향 받은 아스피린을 비장이 싹 다 갈아주고 난 다음에 시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응급상황에서는 혈소판 수혈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수혈받는 혈소판은 아스피린에 의해 공격당하지 않았고, 환자의 몸에는 아스피린이 더 이상 약효를 발휘하지 않거든요.


(계속)

작가의 이전글혈소판, 간섬유화의 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