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소판 (3)
1. 사람의 당화혈색소 수치는 얼마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가장 높게 보고된 당화혈색소는 몇 %였을까요?
2. 근육이나 지방세포는 GLUT-4라는 '문'을 통해서만 포도당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때 ‘문(GLUT-4) 열어 주세요‘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바로 인슐린입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아무리 인슐린이 지시해도 문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흡수되지 못한 포도당은 갈 곳을 잃고 혈관 속에서 방치됩니다. 바야흐로 당뇨의 시작입니다.
3. 인슐린 없이도 포도당을 흡수할 수 있는 세포도 있습니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의 세포가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뇌세포는 인슐린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포도당을 흡수합니다. 이런 세포들은 세포 외부의 포도당 농도가 급격히 오르면 내부 농도도 덩달아 오를 수 있습니다.
4. 인슐린에 의존하지 않고도 포도당 흡수가 가능한 세포들이 많은 장기에서 당뇨의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망막 세포, 신장 세포 및 말초신경세포는 외부 농도에 따라 (제한 없이) 포도당이 흡수됨으로써 문제가 생긴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밀려드는 포도당을 미토콘드리아가 모두 처리하지 못해 비효소적 경로로 포도당이 처리되고 그 결과 소르비톨(푸룬)이 형성되거나 AGE(마이에르)가 형성되었습니다. 부하를 받은 미토콘드리아는 활성 산소를 과도하게 만들었습니다.
5. 적혈구를 비롯한 혈액세포 또한 인슐린 비의존성 포도당 흡수가 가능합니다. 당화혈색소(HbA1c)는 적혈구 내부의 헤모글로빈이 포도당과 결합한 비율을 알려 주는 수치이므로 이론적으로 HbA1c는 100%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헤모글로빈이 당화(glycated) 되면 됩니다.
6. 논문 검색에 따르면 21.2% 의 당화혈색소로 당뇨를 진단받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1년간 30kg의 체중 감소를 보인 62세 일본 여성이 편측 마비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있어 병원을 내원했고, 당시 그녀의 혈당은 774mg/dl였고, 당화알부민은 무려 100%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설탕에 푹 절여진 적혈구가 혈관 속을 다니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7. 20% 는 낮게 보일만큼 더 높게 나온 논문도 찾을 수 있습니다. 1977년 캐나다의 한 환자는 당화혈색소가 무려 61.5%나 나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아무런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고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확인되었다고 하니 일반적인 체질(?)이라고 볼 수 없거나 측정상의 오류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8. 우리의 주인공 혈소판과 혈관 내피세포 또한 인슐린에 상관없이 포도당을 흡수하는 세포에 속합니다. 보호장치 인슐린 없이 고스란히 고혈당에 노출(피폭)되는 세포들이 그러하듯 이 두 세포 또한 당뇨환자에게 심각한 합병증을 야기합니다. 내피세포 기능 부전(Endothelial Dysfunction)이라 부르는 과정은 당뇨환자의 심혈관계 합병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9. 먼저 고혈당에 절여진 혈관 내피세포에서는 사구체의 막 세포에서 일어났던 현상과 유사한 일이 벌어집니다. 과도한 포도당과 비효소적으로 결합해 마치 스테이크처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혈관 내피 세포 때문에 혈관 벽은 더 이상 매끈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해지기 시작합니다. (ICAM-1, VCAM1) 미토콘드리아 기능 부전으로 세포 전달체계에 오류가 생겨 인슐린과 같은 신호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10. 앞서 몇 번 나온 내용이지만 인슐린은 혈관 내피 세포로 하여금 NO를 분비하게 만듭니다. 신체 조직(자식)에 더 많은 영양분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달될 수 있도록 혈액이 흘러가기 좋게 혈관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11. 그런데 고혈당 탓에 인슐린의 신호를 제대로 못 받은 혈관 내피세포에서는 NO를 잘 생산하지 못합니다. 당뇨환자의 혈관은 좁아지고, 경직됩니다. 문제가 이것만이라도 심각할 텐데 더 큰 문제는 NO가 혈소판의 흥분을 막는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12. 출혈은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비상 상황이므로 혈소판은 언제든지 터져서 지혈할 준비태세를 합니다. 지난번 수혈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들려드렸듯 흥분하는 혈소판을 자제하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NO는 혈소판을 자제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13. 고혈당 상황에 노출된 혈소판도 문제가 있습니다. 고혈당은 거핵세포를 활성화시켜 더 많은 혈소판을 훨씬 더 일찍 혈관으로 분비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당뇨 환자의 혈소판의 수명은 정상인에 비해 짧고 미성숙한 젊은 혈소판(망상혈소판)이 더 많습니다. 미성숙한 혈소판은 응고되려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혈소판 표면 단백질도 당화(Glycation)되어 당사슬이 드러나므로 훨씬 접착하기 쉬워집니다. 마치 오프라인 타이어처럼 훨씬 더 끈적끈적하게 접지력이 좋아집니다.
14. 더불어 마지막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 tPA라는 청소부의 활동도 억제됩니다. tPA는 상처가 난 혈관내피세포가 ’비록 구멍을 막되 너무 심하게 막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혈관으로 흘러 보내는 보험 장치입니다. tPA는 플라스민이라고 하는 혈전 용해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과도하게 만들어진 피딱지(피브린)를 녹여냅니다. 그러니까 실수한 도장을 지우는 리무버와 비슷합니다. tPA를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환자에게 투여하여 혈관의 재개통을 기대하는 데 쓰기도 합니다.
15. 그런데 당뇨환자의 지방세포, 특히 복부의 내장 지방에서 이 tPA를 억제하는 PAI-1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마지막 보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당뇨환자에게 혈전이 생기면 더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16. 요약하자면 1) 매끈매끈한 포장길은 울퉁불퉁한 비포장길로 2) 온순한 혈소판 대신 호전적이고 수명이 짧은 혈소판으로 3) 내피세포를 보호하던 NO의 생성은 감소하고 4)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뒤처리를 하던 tPA마저 줄어드니 당뇨환자의 내피세포는 혈전이 생기기 매우 적합한 환경이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당뇨환자는 혈전을 안정화시키는 그물(피브리노겐)마저 많이 만들어집니다. 재료가 많으니 그물이 더 크고 촘촘하게 짜입니다.
17. 그래서 당뇨환자에게 혈소판 SOS신호 억제제, 아스피린이 많이 처방됩니다. 예방 효과도 제법 준수합니다. 아스피린의 일차예방 효과 메타분석(ATT 연구)에서, 아스피린(75-500 mg) 사용군에서 전체 혈관질환의 발생 위험도는 12%, 비치명적 심근경색증은 23% 감소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다만 출혈 위험이 있어서 예전처럼 무조건 처방하지는 않습니다.
18. ACE 억제제(ARB)와 SGLT-2i도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ACE 억제제는 신장보호효과와 혈압 강화효과 뿐 아니라 혈관 내피세포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므로 당뇨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E 억제제는 안지오텐신 II를 차단하여,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해진 NO가 혈관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돕습니다. SLGT-2i는 NO 생성을 늘리고 NLRP3 경로를 억제해 염증 수준을 낮추어 혈관 내피세포 기능부전을 개선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