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파린과 PT(INR)

by 예재호

1. 간 검사 항목 정리도 슬슬 끝이 보입니다! 오늘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표, 피가 멈추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프로트롬빈시간(PT)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2. 지혈은 뻥 하고 뚫린 혈관 벽을 혈소판과 응고 인자가 힘을 합해 막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거미줄 용액) 지혈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여러 방법 중 PT(INR)는 응고 인자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응고 인자에 문제가 생기면 지혈 시간 PT가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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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응고 인자는 단백질이므로 여타 단백질이 그렇듯 역시 간에서 대부분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PT가 늘어나면 의사들은 간 기능, 특히 생산능력이 떨어졌다고 짐작합니다.




4. 간 환자의 중증도와 예후를 가늠하는 데 쓰이는 지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차일드-퓨 점수(Child-Pugh Score)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처음 고안되어 쓰이기 시작한 이 점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빌리루빈, 알부민, 복수 정도, 간성뇌증 정도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응고시간 PT(INR)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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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총 5가지의 항목에 대해 각각 1부터 3점까지 매긴 뒤 모두 합해 나온 점수에 따라 간 기능과 생존율을 가늠합니다. 예를 들어 10점부터 class C로 분류하는데 이 경우 말기 간부전 상태에 해당하며, 환자의 1년 생존율은 약 45%라고 예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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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근에는 차일드-퓨 점수를 내는 항목 중 복수나 간성뇌증엔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 하여 100% 객관적 수치만 사용하는 MELD (Model for End-Stage Liver Disease) 점수를 쓰기도 합니다. (특히 간 이식 분야) MELD 점수가 높을수록 더 위급한 상태로 분류되며, 더 높은 점수의 환자에게 간을 먼저 이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MELD 수치에는 뇌증과 복수, 알부민은 빠지고, 대신 빌리루빈과 크레아티닌, 그리고 PT(INR)가 포함됩니다.


7. 그러고 보니 MELD엔 알부민이 빠졌습니다. 사실 알부민과 PT(INR)은 간의 생산 능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니 지표가 중복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8. 알부민과 응고인자 간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기억이 가물가물하실 수 있으므로 알부민 복습을 먼저 하겠습니다. 간은 하루에만 15g의 알부민을 만들어 냅니다. 워낙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혈액 내에서 관찰되는 총단백질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알부민은 흔하고,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잘 감소하지 않습니다.



9. 이런 알부민과 비교하여 PT(INR)은 좀 더 최근, 또는 실시간 간 생산 능력을 보여줍니다. 알부민의 반감기는 3주 정도이지만 PT(IRN)을 늘리게 만드는 응고 인자의 반감기는 훨씬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료 후 간이 잘 회복되는지 볼 때도 PT(INR)가 좀 더 유용합니다.


9. 더불어 좀 더 순수하게 간 상태만 반영하는 것도 PT(IN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부민은 영양이 부족하거나 신장질환이 있거나 염증 상태가 지속되어도 수치가 감소할 수 있지만 PT(INR)은 (거의) 다른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간의 합성 능력에만 종속적으로 변동됩니다. 대신 알부민은 간의 만성적인 상태를 잘 반영합니다.




10. PT(INR)는 1930년대에 개발된 (거의 100년 전) 검사 항목입니다. 그때 과학자들은 A라는 물질이 혈관 속에 준비 상태로 떠 다니다가 출혈이 일어나면 B라는 물질로 바뀌어 지혈을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프로트롬빈(A)이 트롬빈(B)으로 바뀌어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증명했고 과학자들은 이 변환에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프로트롬빈-시간이라고 부릅니다.


11. 시간이 흐르면서 PT가 간 질환의 중증도와 비례한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특히 담도가 막힌 황달 환자에서 PT가 늘어났을 때, 치료 목적으로 담즙산을 먹여주면 환자도 좋아지고, PT도 정상화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비타민K가 지용성인 탓에 담즙산이 없으면 제대로 흡수가 안 되고, 비타민K는 프로트롬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시험 삼아 담즙산 대신 비타민K를 주어도 환자의 PT는 예상대로 정상화되었습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N5HLU2AWnQ?xmt=AQF01sdFiJN1v67ycB89A0dqUfJVpYrk38CNiuDDF-YcAQ


12. 그런데 중증의 간 환자는 아무리 비타민K를 보충해 줘도 PT 수치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원료(비타민K)를 충분히 공급했는데도 상품(프로트롬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프로트롬빈을 생산하는 공장에 심각한 문제(중증의 간 환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프로트롬빈과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은 간이거든요.


STRIKE.png 재료(Vit.K)가 있으면 뭐 하누 공장이 멈췄는데


13. 잘 알려져 있다시피 PT(INR)는 항응고제 와파린을 모니터링하는 지표입니다. 와파린은 간에서 필요한 비타민K가 재활용되는 과정을 방해합니다. 우리 간은 응고 인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타민K를 한 번만 쓰고 마는 게 아니라 몇 번에 걸쳐 재활용하는데 와파린은 그 과정을 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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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비타민K가 부족하면 간은 지혈 작용을 못하는 빈 껍데기 프로트롬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만들어지는 불량품의 명칭이 의외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바로 PIVKA(Proteins Induced by Vitamin K Absence/Antagonism)입니다. 네, 맞습니다. 간암의 표지자 PIVKA-II의 그 PIVKA입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Osa_KfAZhj?xmt=AQF0ibNjg4ZqZhs4n1YGPJHCGY1tRXj28DsgaeJkcefMHw


15. 와파린을 처방받으면, PT(INR)을 측정해 적절한 수준으로 비타민K을 ‘내다 버리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환자마다 필요 용량은 다르므로 그동안 병원에서는 헤파린을 사용해 aPTT를 늘리는 방식으로 혈전 발생을 예방합니다. 비타민K의 재활용과 관련된 약제이므로 비타민K가 많이 든 음식의 섭취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번 용량이 정해지고 나면 더 적게 먹어서도 안 되고(와파린 효과 증대, 출혈 위험) 더 많이 먹어서도 안됩니다. (와파린 효과 감소, 혈전 위험) 비타민K가 많은 음식들에는 녹색 채소, 콩, 발효 식품, 건강 보조제 등 이 있습니다.


약의 용량이 정해지면, 먹던 대로만 드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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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무래도 PT가 늘어난 중증의 간 환자는, PT가 연장될 만큼 응고 인자를 못 만들어 내는 상태이므로 출혈이 많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간경화나 간암 환자가 토혈을 심하게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고 인자가 줄어든 만큼 항응고 인자도 함께 감소함으로써 실제로는 간 환자 역시 출혈보다는 혈전 형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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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것을 재평형 상태(Rebalanced Hemostasis)라고 부릅니다. 브레이크(응고인자)도 못 만들지만 엑셀(항응고인자)도 못 밟으니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유지되는 상태인데, 출혈을 의식하여 응고 인자 수혈(FFP 등)과 같은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수혈이 혈관 내 압력을 높여서 정맥류 출혈을 유발하거나, 불필요한 응고 인자 투여가 혈전 발생을 촉진할 위험이 있습니다.


18. 특히 간 환자들은 혈전 형성의 경향성이 일반 환자보다 더 높은 혈관 생리를 가집니다. 간이 딱딱해지는 탓에 혈류는 정체되고, (혈소판 수명 감소) 간염으로 생긴 만성 염증 반응은 지속되고, 혈관 내피세포에서는 혈전 유발 인자 (vWF)도 많이 생성됩니다. 정맥류 출혈마저도 출혈 성향 때문이 아니라 문맥 혈전 등과 관련하여 일어난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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