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트레스와 교감 신경, 코르티솔 분비는 항상 연동될까요? 교감신경을 덜 활성화하거나 코르티솔 분비를 줄이면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까요? 내 몸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코르티솔을 중심으로 통해 살펴봅니다.
2.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부신은 발생학적으로 서로 전혀 다른 두 부위가 융합된 구조입니다. 중심부위는 신경계(신경외배엽) 조직이고, 바깥 부분은 내분비조직입니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등 쪽, 대동맥 근처의 척수신경에서 신경다발이 뭉툭하게 한 다발 나온 뒤, 그 아래쪽 (신장, 생식기) 쪽에서 올라온 내분비 조직이 신경다발을 외투처럼 감싸며 만들어집니다.
3. 중심, 안쪽 부위는 사실상 교감 신경의 일부입니다. 다만 (마치 막다른 길처럼) 다른 신경과 연결되지 않고 신경 전달 물질 (노르에피네프린(NE)이 부신으로 폭포수처럼 (말 그대로)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앞서 다뤘듯이 부신은 신경에서 방출된 노르에피네프린을 혈액을 통해 장거리 운송이 가능한 아드레날린 (에피네프린)으로 변환하는 효소가 많아서 신경전달신호가 내분비신호로 변신해 또 다른 역할을 시작하게 됩니다.
4. 이렇게 교감신경 말단에서 나온 노르에피네프린을 부신이 아드레날린으로 '재활용'하기도 하고, 교감신경과 코르티솔이 하는 일이 비슷하다 보니 자율신경과 부신의 관계가 주종관계인 것처럼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교감신경의 항진 때문에 코르티솔이 높게 나온다고 분석하거나,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고 있으니 교감신경이 과도한 상태라고 진단하고 그러므로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았구나라고 평가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입니다.
5. 자율신경과 HPA(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1) 시상하부와 청색핵이 연결되어 있어 상호 간 자극받는 구조이며 2) CRH(코르티코트로핀 방출 인자)는 NE(교감신경)가 더 많이 분비되도록 자극하고, NE는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자극하는 피드 포워드(feed-forward) 메커니즘도 존재합니다. 3) 또한, 두 시스템 모두 전두엽 피질 등 중추신경망에 의해 억제 조절을 받는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6. 먼저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는 비례하지만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코르티솔이 높게 나왔다고 무조건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라고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Fischer 등은 신생아 및 소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의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수치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는데, 참가자들에게서 코르티솔 수치 급증이 빈번하게 나타났지만, 주관적인 스트레스 인식과는 무관했다고 합니다.
7. 반대로 코르티솔이 낮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다, 낮은 상태다라고 생각해서도 곤란합니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나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 섬유근통이나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들 중엔 일반인에 비해 코르티솔이 매우 낮게 측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스트레스가 일반인보다 적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8. 관련되어 알로스테틱 부하(Allostatic Loa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너무 강한 스트레스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우리 몸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려다가 이 부하가 한계치에 다다르면 생리적인 변화로 나타나며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입니다. 7번 항목의 환자들이나, 일명 번 아웃 증상은 알로스태틱 부하가 과도하여 코르티솔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9. 자율신경과 코르티솔 간의 관계 또한 일률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데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은 HRV(심박변이도검사)를 통해 자율신경 상태를 알아보는데, 현실적으로 교감신경이 얼마나 항진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10. 일부에서는 저주파(LF)가 높으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었다고 해석하거나, 혹은 LF(저주파)/HF(고주파) 비율로 교감 신경 우세를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HRV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이 얼마나 알로스테틱 부하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율신경 조절 능력(autonomic regulation capacity), 변동성(SDNN)이 줄어들었다면 우리 몸이 대응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했다고 볼 수 있음)
11. 스트레스라고 다 똑같이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Selye는 스트레스를 고통(distress)과 긍정적 스트레스(eustress)로 구분했습니다. 전자는 압도감을 유발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를 의미하며, 후자는 즐거운 도전에 직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둘 다 코르티솔의 상승을 야기할 수 있지만 결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12. 스트레스에 부교감 신경의 반응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미주 신경 이론(Polyvagal Theory)에서는 부교감신경의 활성화에 따라 스트레스 반응이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극도의 심각한 스트레스에서 졸도하는 등의 반응은 부 교감신경이 유발한 것일 수 있습니다.
13.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율신경계와 부신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조화가 무너지면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Bauer, Quas, and Boyce, 2002) 자율신경계와 HPA 축 활동 모두 높은 과각성 상태나 그 반대의 저 각성 상태(둘 다 낮음), 또는 비대칭적 활성화가 질병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14.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반응으로 코르티솔이 분비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코르티솔은 위기에 대응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스트레스 요인과 관련된 불쾌한 감정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소량의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기억력과 동기 부여가 향상되고 면역 체계가 조절되며 통증 역치도 증가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타액 코르티솔 수치 상승과 부정적 정서 감소 사이의 연관성을 보고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15. 부신에서 분비되는 또 다른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DHEA와 DHEA-S가 코르티솔과 길항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를 올리는 데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DHEA는 동화작용 및 항 코르티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한 때 젊음의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DHEA와 DHEA-S는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안드로겐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서 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생성의 전구체입니다. 탈황산화된 DHEA만이 생물학적으로 활성을 가지며, DHEA-S는 DHEA의 저장소 역할을 합니다.
16. DHEA 대 코르티솔 비율은 스트레스에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는 척도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비율이 높은 사람(DHEA 수치가 코르티솔 수치보다 높은 사람)은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더 강하고, 동일한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받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이 비율이 낮으면 만성 스트레스(Jeckel et al., 2010), 우울증(Young et al., 2002) 및 인지 장애(Ferrari et al., 2001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17. 하지만 안타깝게도 DHEA를 보충해 보거나, 치료제로 써보려는 노력이 실제 효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것 같긴 한데 약으로 쓰기엔 효과가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성 호르몬의 전구체이다 보니 전립선암이나 유방암 발생 위험도 걱정되고, 간 독성도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18. 복잡하긴 하지만 코르티솔은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문제'고, '자율 신경 반응과 균형도 중요하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부신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매우 다양하고 일률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부신 기능이 떨어졌다'라는 말은 다소 애매모호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