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이 높고 코티솔이 낮을수록 공격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제로서 스테로이드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정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지용성 호르몬, 스테로이드 호르몬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3. 스테로이드(Steroid)라는 이름의 뜻은 지용성, 즉 기름 성분으로 만들어진 호르몬이란 뜻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크게 세 가지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다룬 항염증 효과를 지닌 '위기 대응 호르몬' 코티솔이고, 또 하나는 나트륨과 수분 재흡수에 관여하고 중요한 혈압약의 기전이 된 알도스테론이며, 마지막으로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등의 성 호르몬이 스테로이드 호르몬에 속합니다.
4. 이 호르몬들은 콜레스테롤을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몸 안에서 매우 밀접하게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제를 투약받았을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는 까닭은 코티솔이 알도스테론 호르몬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부종이나 혈압의 상승 등) 테스토스테론과 코티솔 역시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5. 코티솔과 테스토스테론은 모두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를 통해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됩니다. 뇌하수체는 부신에는 ACTH라는 호르몬을 보내 코티솔을 얼마나 만들지 알려주고, 생식선(남성에서는 고환, 여성에서는 부신과 난소)에는 LH라는 호르몬을 보내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이만큼 만들면 된다고 지시합니다.
6.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두 시스템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입니다. 즉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선(HPG 축)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을 억제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시상하부에서 코티솔을 많이 만들어내기로 결정하면 테스토스테론은 덜 나오고,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필요하면 코티솔은 덜 나오게 됩니다. (코티솔은 모든 단계에서 HPG 축 활동을 억제하고, 테스토스테론은 시상하부 수준에서 HPA 축 활동을 억제합니다(Johnson et al. 1992 ; Tilbrook et al. 2000 ; Viau 2002 )
7. 앞서 다뤘듯이 코르티솔은 위기 상황에서 분비되며, 신체에 즉시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면역 반응이 억제되는 것 (항염 작용)도 실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부수적인 효과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상식적으로) 위기 상황이라면 생식 기능도 당연히 억제되어야 합니다. (필요 없는 곳에 에너지를 쓸 수는 없습니다.)
8. 발기 부전의 원인 중에 스트레스가 있다는 점도 언급해 볼 수 있습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테스토스테론 수치 감소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정자 생성과 생식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선 축의 변화는 성행위와 성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성의 경우 만성 스트레스는 생리 불순이나 무월경을 포함한 생리 주기 장애를 유발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은 난포 성숙과 난자 배출을 방해하여 가임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Gallo-Payet et al. 2017).
9. 스트레스와 코티솔 분비는 일반적으로 정비례합니다. 부신피질은 하루에 약 10~20mg의 코르티솔을 분비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코르티솔 분비량이 10배나 증가할 수 있습니다. (Bornstein et al. 2016) 그러므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성호르몬의 작용이 축소되는 것은 코르티솔 분비량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0. 사실 코티솔과 테스토스테론이 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극과 극이므로, 이러한 대립적인 관계는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단백질을 합성해서 근육과 뼈를 키우는 동화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인데 반해, 코티솔은 근육과 뼈를 녹여서 에너지로 만드는 대표적인 이화 작용 호르몬이기 때문입니다. 복습하자면 김여사, 인슐린이 우리 몸에서 가장 강력한 동화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었고, 간헐적 단식이 가진 장점의 비밀은 또 다른 동화호르몬인 성장호르몬의 분비에 있었으며, 골다공증의 원인 또한 동화호르몬, 에스트로겐의 부족이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11. 이런 코티솔과 테스토스테론의 균형이 사회적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은 성공에 대한 열정과 동기,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 자신감, 위험 감수, 지위 추구 성향 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범죄자에게서 테스토스테론이 높게 측정된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12. 실제로 범죄자에게서 테스토스테론을 측정해 본 결과 높게 나올수록 더 공격적이라는 상관관계가 확인되었습니다. 한데, 코티솔이 낮게 측정되는 범죄자에서만 해당되는 결과였습니다. 코티솔이 높게 나온 범죄자는 테스토스테론과 공격성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13.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코티솔이 우리 몸으로 하여금 외부 자극에 대해 불안, 위축, 공포, 회피를 유발하는 것에 있다고 과학자들은 분석합니다. 기저 코티솔이 높게 측정된 실험자들은 분노한 표정을 보여줬을 때 회피했고(Putman et al. 2004 ; van Honk et al. 1998 , 2000 ), 두려움을 느꼈을 때 위축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공격성도 낮다(Böhnke et al. 2010 ; Hawes et al. 2009 )는 보고가 있습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면 코티솔의 선택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14. 결론적으로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 단독으로는 공격성을 예측할 수 없고 테스토스테론/코티솔 비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Terburg et al. 2009 ; van Honk et al. 2010 ) 그러니까 공격성은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 테스토스테론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는 코티솔의 부재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15. 신체 강화목적으로 단백동화 안드로겐 스테로이드(AAS)를 복용하는 운동인이 있습니다. 불법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실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관리 영역을 벗어나 임의로 생리적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용량, 즉 자연적인 안드로겐 생성량이나 치료 용량의 10~100배에 달하는 용량을 장기간 투여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과 합병증에 노출됩니다. 이 중에 이유 없는 공격성(일명 로이드 레이지 또는 스테로이드 분노로 알려진)과 같은 다양한 심리 증상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16. 코티솔은 대표적인 이화작용을 하는 호르몬이다 보니, 기껏 힘들게 기른 근육을 코티솔이 슬금슬금 녹여 없애는 것은 그분들로서는 매우 지양하고 싶은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쉬와간다 등의 복용이나, 운동 후 단당류의 섭취 등도 실은 코티솔 수준을 낮추려는 노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코티솔은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해 부종을 일으키므로 선명한 근육 윤곽을 지향하는 그들에게는 더욱더 골칫거리인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 탓에 일부 보디빌더들은 시합 전 코티솔 억제제를 써서 근육선을 도드라지게 만드는데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17. 물론 로이드 레이지에는, 시상하부에서 AVP가 증가하고, 세로토닌이 억제되는 것이 더 큰 요인으로 알려졌지만, 어쩌면 극단적인 공격성에 근육을 기르기 위해 테스토스테론은 극도로 높이고(주입하고), 코티솔은 인위적으로 낮추는 노력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