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콜레스테롤 검사는 꼭 금식하고 채혈해야 할까요? 식사하고 한 검사 결과는 어떻게 바뀌는 걸까요?
2. 콜레스테롤 수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금식이 필수라고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측정에 공복 상태가 요구되던 항목은 중성지방이었는데 최근에는 공복 중성지방보다 식후 중성지방이 훨씬 중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금까지 중성지방을 공복 상태에서만 측정하도록 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식후 중성지방은 음식에 따라 변동성이 너무 커서 기준점을 잡기가 까다로웠습니다. 과학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공복 중성지방을 지표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중성지방을 낮추는 데 쓰이는 약들도 대부분 공복 중성지방의 감소 효과를 증명한 것들입니다.
4. 두 번째로 예전에는 LDL 콜레스테롤을 직접 구하지 않고 중성지방과 HDL, 총콜레스테롤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데 이 식은 중성지방이 너무 높게 나와버리면 LDL 콜레스테롤 계산값의 정확도가 떨어져 버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동맥경화의 원인이 LDL 콜레스테롤에 있으니만큼, 중성지방은 정확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낮을수록 바람직했습니다. 400mg/dl이 넘어가면 공식을 활용할 수가 없었거든요.
5. 세 번째로, 이어지는 이야기긴 하지만 중성지방이 동맥경화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은근히 무시받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고백컨대 저 또한 '중성지방쯤이야 높게 나와도 췌장염 정도나 일으키지, 당장 큰 일은 아니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중성지방이야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지, 꾸덕하게 혈관에 쌓이는 콜레스테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쌓이기도 전에 세포에서 에너지로 다 흡수될 건데 뭘, 이런 식이었습니다.
6. 그 동안 용감하게 중성지방을 무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중성지방은 역상관 관계인 HDL 콜레스테롤의 감소량을 보정하면 항상 심혈관질환과의 관련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중성지방이 높은 사람이 심혈관질환도 좀 더 생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막상 그 정도가 "딱 HDL의 감소 폭" 만큼이라는 결론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말인 즉슨, 만약 HDL 수치가 같은 두 사람이 있다면 중성지방 수치가 높든 낮든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겁니다. (혈중 중성지방이 많아짐 → CETP로 HDL이 중성지방을 가져감 → 중성지방만 많은 HDL은 금방 제거됨)
7. 그런데 (앞서 우리가 다뤘듯이) 중성지방은 거의 모든 콜레스테롤 대사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당뇨환자에서 LDL 콜레스테롤이 낮아도 안심할 수 없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성지방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고, 비록 중성지방이 콜레스테롤로 변신하지는 않지만 결국 둘은 서로가 서로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사이였습니다. 이처럼 밀접하게 동행하는데 동맥경화와 어떻게 관련이 없을 수 있냐는 논란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8. 더불어 공복 상태에서 측정한 중성지방만 기준으로 삼은 걸 지적한 과학자들도 많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공복 상태일 때보다 식후 상태인 시간이 훨씬 깁니다. 우리는 잠을 자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약 16시간) 동안 음식을 먹거나, 소화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동맥경화는 음식이 들어간 직후에 일어날까요 아니면 공복 상태에만 일어나는 걸까요? (혹은 가리지 않거나) 아무래도 식후 중성지방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9. 그래서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2007년, JAMA라는 학술지에 미국 여성 26,509명을 대상으로 식후 고중성지방혈증과 동맥경화 간의 관련성을 알아보기 위해 약 11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됩니다.
10. 연구 기간 동안 1,001명의 참가자가 심혈관 질환을 진단받고 치료받았습니다. (심근경색 276건, 뇌졸중 265건, 관상동맥 재관류술 628건, 심혈관 질환 관련 사망 163건 등) 전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은 추적 관찰 기간 1000인년당 3.46건이었습니다. 중성지방수치와 발생률 간의 관련성을 분석해보니 역시 금식 상태에서 측정한 그룹에서는 기존의 연구 결과와 마찬가지로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총 콜레스테롤, HDL 콜레스테롤 및 인슐린 저항성 지표를 보정한 위험비는 1.09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음, 신뢰구간 0.85-1.41)
11. 반면, 놀랍게도 식후에 중성지방을 측정한 그룹에서는 추가적인 보정을 하였음에도 여전히 심혈관질환 발생과 중성지방 사이에 강력한 연관성이 유지되었습니다. 중성지방이 높은 참가자는 그렇지 않은 참가자에 비해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1.98배가 높게 나왔습니다. (신뢰구간 1.21-3.25) 설마설마 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12. 논문에서는 과연 식후 몇 시간 뒤에 측정한 중성지방 수치가 가장 위험도와 잘 비례하는지도 확인해 봤습니다. 마치 식후 2시간 혈당을 측정하는 것이 당뇨의 진단 기준에 들어가는 것처럼요. 분석 결과 식후 2~4시간 후에 측정된 중성지방 수치가 심혈관질환 발생률과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였는데, 그 비율이 무려 4.48배에 이르렀습니다! (신뢰구간 1.98-10.15).
13. 충격적인 결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둘의 연관성은 금식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진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이 말인 즉슨 지금까지 공복 상태에서 중성지방을 측정한 탓에 중성지방이 심혈관 질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오인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