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 지방 (2)

by 예재호

1. 하지만 중성지방 자체로는 동맥경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맞습니다.




2. 식후 중성지방이 심혈관 질환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해 드리긴 했지만, 사실 중성지방은 직접적으로 동맥경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중성지방은 혈당, 즉 포도당처럼 세포가 흡수해서 바로 쓸 수 있는 에너지 단위, 화폐 개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딱 한 번만 분해하면 곧장 유리지방산 (FFA) + 글리세롤로 바뀌어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3. 예를 들어 중성지방 수치가 10,000mg/dl까지 올라가는 드문 유전병인 가족성 유미지방혈증 증후군(FCS, Familial Chylomicronemia Syndrome)은 높은 중성지방 탓에 혈액은 우유 빛깔을 띄고 심각한 췌장염과 간과 비장비대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의외로 동맥경화는 썩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상과 달리 LDL 콜레스테롤도 평균보다 낮게 측정됩니다.


4. 이렇게 도무지 앞 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드리게 되는 이유는 우리 몸을 순환하는 중성지방이 사실 한 군데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두 군데’에서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중성지방은 간에서 VLDL에 포장되어 출하된 것이지만, 음식을 먹고 난 다음 바로 혈류로 유입되어 곧장 쓰이는 중성지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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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먼저 익숙한 VLDL에 실린 중성지방, 내인성 경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들어온 에너지(수입)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익숙한 그 이름 김여사, 인슐린이 오랜만에 등장합니다. 음식을 먹고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은 간에다가 포도당을 단기 저축-글리코겐으로 바꿔 저장하라고 시킵니다. 글리코겐 창고도 가득 차면 인슐린은 간에다가 이제 포도당을 중성지방(장기 적금)으로 변환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성지방이 바로 내인성 중성지방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중성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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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번째 지방 대사 과정, 식후 중성지방, 외인성 중성지방 경로는 간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다른 영양분은 보통 소장에서 흡수된 뒤 일종의 입국장 혹은 검문소인 간문맥을 통해 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혈액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지방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자가 커서 장의 모세혈관을 통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이삿짐을 나를 때, 엘리베이터에 실리지 못하는 짐은 사다리차를 써야 하고, 사다리차에 실린 짐은 경비실을 경유하지 않고도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식으로 먹은 지방은 소장 융모의 림프관을 통해 흡수된 뒤 쇄골하정맥에서 혈관으로 합류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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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런데 기억하시나요? 기름은 절대 물로 된 혈액 속을 그냥 맨 몸으로 다닐 수 없습니다. 외인성 경로로 들어온, 막 잡아 올린 따끈따끈한 지방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혈관을 통해 운송되려면 포장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크기 때문에 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다이렉트로 혈관으로 들여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그래서 신기하게도. 다름 아닌 무려 소장에서(!) 포장지(아포지단백)를 만듭니다. 그 포장지의 이름은 ApoB48로 간에서 만들어져 VLDL을 포장하던 오리지널 ApoB(100)의 카피 혹은 염가형 제품입니다. 참고로 48이라는 숫자는 오리지널 ApoB의 48% 길이여서 붙은 것이라 합니다. (너무 귀엽습니다.) 이 포장지에 싸여 혈액을 유유히 다니게 된 중성지방 복합체의 이름이 바로 킬로미크론(유미인자)입니다. 그러니까 내인성 중성지방 패키지 VLDL에 대응하는 게 바로 킬로미크론이라 생각해도 됩니다.


9. 막상 혈관으로 들어오고 난 뒤 둘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혈관을 다니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세포들이 중성지방을 파먹도록 내어줍니다. 이 과정은 케이크를 든 선생님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조각조각 나누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눠주다 보니 케이크는 점점 동이 나고, 어느새 케이크를 올려놓은 판만 남게 됩니다. 이때 남은 빳빳하고 꾸덕꾸덕한 판의 성분이 바로 콜레스테롤과 Apo단백질 (B100과 B4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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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인성 경로에서 VLDL의 경우 케이크(중성지방)를 나눠준 뒤에는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LDL 콜레스테롤입니다. 그럼 킬로미크론이 케이크를 나눠주고 난 다음에 남은 케이크 판을 부르는 명칭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있습니다. 킬로미크론에서 중성지방을 내어주고 남은 콜레스테롤이 많은 지단백질을 바로 잔유물, 렘넌트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그리 멋지지 않습니다. 찌꺼기... Rem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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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렘넌트는 또 LDL 콜레스테롤과 거의 비슷합니다. 중성지방을 나눠주고 나니 꾸덕한 콜레스테롤만 남은 것도, 혈관내피세포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끼였다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식후 중성지방이 동맥경화과 연관되는 비밀에 거의 닿았습니다. 맞습니다. 중성지방이 동맥경화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렘넌트가 LDL 콜레스테롤처럼 동맥경화를 일으킵니다. 게다가 염가형 ApoB48 단백질은 ApoB100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합니다. 혈관 벽의 성분인 프로테오글리칸(Proteoglycan)에 더 잘 결합해서 경화반을 더 잘 만들기 때문입니다.


(계속)


12. 혈관을 다니며 신체의 세포들이 VLDL과 킬로미크론에서 중성지방을 파먹고 유리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한 뒤 유리지방산을 에너지로 쓰는 과정에 쓰이는 숟가락의 이름은 리파아제, Lipoprotein Lipase (LPL)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리파아제는 췌장에서 만드는, 지방을 녹이는 효소 리파아제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불어 지방세포가 '감히 김여사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중성지방을 FFA(자유 지방산)으로 분리하는 바람에 지방독성을 일으키고 결국 당뇨가 시작되는 데 쓰이는 효소도 역시 리파아제입니다. (호르몬 민감성 리파아제(HSL)


13. 가족성 유미지방혈증 증후군(FCS, Familial Chylomicronemia Syndrome)은 세포들이 중성지방을 파 먹는 숟가락(LPL)에 문제가 발생한 질병입니다. 케이크를 들고 교실을 돌아봐도 아이들이 숟가락이 없어 멀뚱멀뚱 보기만 할 뿐 케이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결국 혈관 내부에는 케이크로 가득 (중성지방이 10,000mg/dl까지) 차지만 킬로미크론은 사이즈가 커서 혈관 벽을 통과해 동맥경화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처치가 안 되는 킬로미크론은 모두 간과 비장에서 흡수합니다. 치료는 극도의 저지방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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