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 심화 (HDL)

by 예재호

1. 일전에 HDL 콜레스테롤이 높을수록 좋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단순히 수치가 높다고 모두 괜찮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https://brunch.co.kr/@ye-jae-o/75




2. HDL은 말초 조직의 세포가 내보내는 콜레스테롤을 포집하여 간으로 운반하는 특수한 콜레스테롤입니다. HDL이 콜레스테롤을 모아 간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역 콜레스테롤 수송(RCT, Reverse Cholesterol Transport)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을 통해 HDL은 혈관벽에 꼼짝달싹 못하고 끼여버린 LDL 콜레스테롤도 제거하므로 그동안 심혈관질환의 보호 인자로 간주되었습니다.


3. HDL은 다른 콜레스테롤과 비교하면 일생사가 거꾸로, 반대로 흘러갑니다. 비유하자면 HDL콜레스테롤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HDL_BENJAMIN.png


4. 먼저 일반적인 콜레스테롤의 삶을 먼저 복습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중성지방에서 시작합니다. 간은 영양분을 모아 중성지방으로 바꾸고, 콜레스테롤과 함께 ApoB라는 단백질에 담아 혈액으로 내보냅니다. 혈관을 돌아다니며 말초 세포들에게 중성지방을 전해주다 보면, VLDL은 쪼그라들어 LDL 콜레스테롤이 됩니다. 결국 LDL 콜레스테롤은 콜레스테롤이 필요한 세포에게 한 입에 껍질째 꿀꺽하고 먹히게 됩니다. (여기 콜레스테롤 하나요!) 다 먹히고 남은 포장재, ApoB 단백질은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됩니다.


5. HDL 콜레스테롤은 이 과정과 거의 반대입니다. 가장 먼저 간과 소장에서 ApoA1이라는 단백질이 툭 하고 만들어져 혈관으로 배출됩니다. 포장재만 덜렁 가진 채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HDL은 혈관을 돌아다니며 말초 세포에서 '뱉어내는' 인지질과 콜레스테롤 에스터를 받아먹습니다. 세포는 정말 말 그대로 불필요해진 인지질과 콜레스테롤을 ATP(에너지)를 사용해서 밖으로 뱉어내고, HDL은 말 그대로 받아먹습니다.


HDL_ATP.png 세포가 ATP를 써서 콜레스테롤과 인지질을 외부로 뱉어내면 ApoA-1(HDL)이 받아먹습니다.


6. 귀한 콜레스테롤을 뱉어낸다니,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세포도 무한정 콜레스테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쓰다 보면 넘칠 수 있고 넘친 만큼 밖으로 내보내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드디어 HDL (아직은 ApoA1 단백질에 가까운) 내부에도 뭔가가 실렸습니다. 벤자민 버튼이 열 살 쯤 되었을 때 여전히 70대 노인의 얼굴을 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팔 근육을 살펴보던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이걸 VLDL의 생으로 대입해 보면 중성지방이 다 빠져나간, sdLDL 상태에 가깝습니다.


7. 벤자민 버튼이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처럼 HDL도 콜레스테롤을 수거하며 날이 갈수록 동글동글 빵빵해집니다. 원래는 납작했던 ApoA1 단백질 안에 콜레스테롤이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LCAT로 콜레스테롤은 콜레스테롤 에스터가 되고 분자 중앙으로 모여듬) 적당히 젊어진 HDL은, 드디어 중성지방도 받아먹게 됩니다. 바로 VLDL과 LDL로부터 말이죠. 이제 HDL은 중년이 되었지만 중성지방을 받아먹으며 외모상으로는 20대 청년처럼 보입니다.


HDL_life.png


8. 이렇게 다른 콜레스테롤 단위로부터 중성지방을 건네어받는 과정을 CETP (Cholesteryl Ester Transfer Protein) 경로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 CETP 과정은 HDL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미 한번 다룬 적도 있습니다. 바로 VLDL이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LDL을 만나 자신의 중성지방을 덥석 넘겨줘 버린 탓에 더 이상 퇴근하지 못하게 된 sdLDL에서 말이죠.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UP1cZqAImu?xmt=AQF0RZf3S2Dbb1_TpZrykoTqdIcwRIdwbrsJCp1T2dAS1A


9. HDL은 한 땀 한 땀 모은 콜레스테롤을 VLDL과 LDL 등이 가진 중성지방과 1:1로 교환합니다. 고-에너지 중성지방을 갖게 되어서인지 나이가 든 HDL은 정작 모습은 20대 청년, 즉 막 간에서 출하된 VLDL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렇게 젊어진 HDL 콜레스테롤은 간에 의해 흡수됩니다. (SR-B1이 그동안 모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쏙 빼먹거나, ApoE를 감지한 LDLR에 의해 HDL 자체로 흡수됨) 그림 한 장으로 HDL의 생애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RCT.png


10. HDL이 심혈관질환에 보호인자로 간주되고, 수치가 높을수록 질병 예방에 좋다고 여겨졌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HDL이 아직 단백질 ApoA-1인 시절, 내피세포에 끼여 산화되고 있던 LDL을 잡아먹은 대식세포가 '나 콜레스테롤 너무 많이 먹었어, 뱉어낸다.'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를 감지한 Apo-A1(HDL)이 쫄랑쫄랑 다가가 그걸 받아먹습니다. 결국 HDL에게 콜레스테롤을 전해 준 대식세포는 거품세포로 흑화 하지 않으므로 경화반으로의 진행도 멈추게 됩니다. 이걸 비유하자면 '음식이 끼였으나 적절한 타이밍에 치실로 제거되어' 치주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지요!




11. 이런 HDL의 기구한(?) 삶과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기특한 장점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HDL의 수명을 늘려주면 심장에 좋지 않을까? 그러고 곰곰이 따져보니 문제가 되는 게 중성지방을 넘겨받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중성지방을 넘겨받지 않으면 HDL 콜레스테롤은 '간에 흡수되지 않고' 계속 혈관을 떠돌며 콜레스테롤을 흡수할 것이니까요. 실제로 유전적 CETP 결핍증 환자 (즉, HDL이 다 자라도 중성지방을 못 받아먹게 된 환자)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높고, 더불어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았습니다.


12. 과학자들은 좋은 콜레스테롤 HDL을 올리는 첫 번째 방법으로, CETP 효소를 억제하는 방식을 연구하기로 합니다.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시도한 것은 화이자였습니다. 화이자는 최초의 CETP 억제제 토리세트라핍(Torcetrapib) 개발에 무려 8억 달러(약 1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습니다. 당시 화이자는 리피토, 아토르바스타틴으로 스타틴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때였는데, 리피토로는 LDL을 낮추고 반대로 토리세트라핍으로는 HDL을 높이는 전략으로 심혈관 질환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13.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재앙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위약군(리피토만 먹은 팀)보다 토리세트라핍 복합제를 먹은 팀에서 사망률이 60% 나 높게 나타났고, 심혈관 사건 발생률도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HDL 수치를 늘리는 데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토리세트라핍 군은 HDL이 약 72%나 높아졌고, 반대로 LDL 수치는 약 25% 나 추가로 하락했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만 보면 차라리 성공에 가까웠습니다.


ILLUMINATE_paper.png


14. 결국 화이자는 2006년 12월, 결국 임상실험을 중단하고 프로젝트를 폐기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토리세트라핍이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작용해 혈압을 올린다는 점이 결정적이긴 했습니다만, HDL 수치를 올리는 것만으로 정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과학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LLUMINATE.png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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