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 심화

by 예재호

1. 왜 동맥경화만 있고, 정맥경화는 없는 걸까요?




2. 콜레스테롤이 몸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대사 되는지에 관해서 충분히 다룬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콜레스테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지, 동맥경화는 또 어떻게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악화를 막을 수 있는 포인트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3.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왜 동맥경화만 있고 정맥경화는 드문지에 대한 답을 드려야 합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동맥경화만 있고 정맥경화가 드문 이유는 해부학적 구조 차이 때문입니다. 동맥은 정맥에 비해 근육 세포가 훨~씬 많습니다. 혈관에도 근육이 있어?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혈관 평활근이 동맥경화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활근 이야기를 따로 타래를 내어 먼저 드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이 근육세포, 혈관 평활근은 평상시 꽤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맡은 임무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보일러 분배기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혈액을 효율적으로 각 장기에 배분하는 게 바로 이 혈관 평활근이 하는 일입니다. 1번 방 보일러 열어, 온수가 부족하네? 2번 방 보일러는 닫아, 이런 식으로, 평활근은 자율신경의 지시를 받아 혈액공급을 조율합니다.


4. 예를 들어 우리가 격한 운동을 할 때와 편안히 음식을 소화시킬 때 혈액이 공급되는 장기가 다릅니다. 식곤증은 소화를 위해 장으로 가는 동맥의 혈관 평활근이 이완되고 나머지 혈관이 수축하며 혈액공급이 줄어드느라 발생하는 증상일 수 있습니다. 앉았다 일어날 때 이 혈관 평활근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기립성 저혈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출혈이 일어났을 때 말초 장기로 가는 혈관 평활근이 수축하지 않으면 중요한 장기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이렇게 똑똑한 혈관 평활근 세포는 신기한 특징이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마치 줄기세포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혈관 평활근 세포는 외부 침입자를 잡아먹는 면역계의 대식세포처럼 변신할 수도 있고, 콜라겐을 만들어내어 결합조직을 만들어내는 섬유아세포처럼 변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성격을 바로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혈관 평활근 세포의 가소성은 동맥경화를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인자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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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로 이뤄진 혈액을 통해 기름을 보내려다 보니 배달 사고가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 콜레스테롤은 꾸덕해서 사고가 일어나면 처리가 상당히 골치 아픕니다. 하지만 우리 혈관에는 목적지를 잃고 혈관 내피세포에 빠져버린 LDL 콜레스테롤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앞서 다룬 HDL의 ApoA1과 ABCA1의 콜레스테롤 방출 작전이나 앞으로 다룰 대식세포 등이 사고를 수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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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런데 일반적인 수준을 초과하면 문제가 됩니다. LDL은 너무 많고, 내피세포의 손상은 지속적이며, HDL은 낮습니다. 이럴 때 중막에 있던 평활근세포가 나섭니다. 한데 이러한 시도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그 이유는 '변신은 하되 제대로 작동은' 못하는 한계 때문입니다. 평활근 세포는 흡수되지 않은 콜레스테롤 찌꺼기를 먹어치우기 위해 대식세포처럼 변신하는데, '콜레스테롤을 흡수하되', '대식세포만큼 콜레스테롤을 뱉어 내지는 못해' 적절히 폐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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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또한 도무지 염증이 관리되지 않으면 평활근세포는 섬유아세포로 변신하여 병변을 덮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한데 이것 역시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껏 만든 콜라겐을 가만히라도 두면 좋을 텐데 자꾸 녹이려고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에 깔린 대식세포 '흉내를 내는' 평활근 세포가 많이 분비하는 MMP (Matrix Metalloproteinase)라는 콜라겐 분해인자가 문제입니다. 조용히 썩혀져야 할 폐기물이 혈관에 노출되니 화들짝 놀란 혈소판들이 혈전 작용을 시작합니다. (뇌졸중이나 급성 심근경색에 이 MMP의 책임이 매우 크니 기억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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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기한 것은 정맥혈관에는 이 평활근 세포가 적으므로 정맥경화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막상 동맥의 역할을 하게 되면 평활근 세포가 순식간에 늘어나고, 변신도 가능해지며 그 결과 동맥경화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맥 혈관에 평활근 세포가 적은 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일 뿐 태생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 예전, 정맥(Saphenous Vein)을 활용해 심장우회술(CABG)을 한 환자에게서 이식한 정맥이 자꾸만 막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정맥이 동맥 환경에 노출되면 높은 압력과 높은 전단력에 적응하기 위해 평활근이 크게 증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맥 경화도 당연히 일어났습니다. 한데, 동맥화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역시나 그 또한 어설펐고,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키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동맥 이식 (내흉동맥, 요골동맥)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1. 혈압약으로 자주 쓰이는 노바스크와 같은 CCB(칼슘채널차단제)는 혈관 평활근의 수축력을 감소시키는 기전으로 작동합니다. 한데, 단순히 혈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동맥경화의 진행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세포 내 칼슘 농도가 높으면 평활근의 형질 변환 경향이 더 커지는데 CCB는 칼슘 농도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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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과학자들은 평활근 세포의 변신을 관장하는 마스터 스위치인 KLF4라는 단백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스위치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면, 평활근 세포가 나쁜 방향으로 변신하는 것을 막고 동맥경화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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